5. 미녀봉의 의미와 그 실체
5. 미녀봉의 의미와 그 실체
  • 김계유
  • 승인 2019.01.16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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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봉! 정말 딱이죠.”
어떻게 보아도 눈앞의 산자락은 이미지가 정말 딱이었다. 오뚝한 코, 볼록한 가슴. 미끈한 이마, 도툼한 입술까지 어느 모로 보아도 옆으로 누워 있는 선명한 여자의 외모였다. 
“글쎄”
대답이 애매하거나 동의하고 싶지 않을 때면 보여주는 노인 특유의 반응이었다.
“…”
“음도살망(殺盜淫妄) 능엄경에 나오는 계율의 차례라지.”
“…”
“왜곡된 인간 의식의 반영. 불교의 능엄경(楞嚴經)에 의하자면 살인(殺人)보다 더욱 중요한 게 음행(淫行)이라는 거 아냐. 그렇다면 앞뒤 차례는 외면하더라도 미녀봉이 뜻하는 의미는 뭐겠어. 왜 산 모양에서 아름다운 여성의 육체를 보느냐 이 거지. 추한 여성의 육체라도 마찬가지겠지만.”
사내로서는 대꾸할 말이 없었다. 너무 진지한 노인의 반응도 의외였지만 되새겨보면 틀린 말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산을 여성으로 의인화시키는 능력도 능력이지만 그 능력은 결국 지배당하는 틀이 있다는 거 아냐. 성욕 명예욕 식욕 수면욕 지식욕 그것도 아니면 또 뭐랄까.”
“들려주시죠.”
사내는 비로소 노인을 무시하지 않기로 했다. 못 생긴 외모와 달리 사람을 사로잡는 사색의 깊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람을 무시하기 어렵게 만드는 노인 특유의 묘한 분위기. 사내는 그것을 외면하기가 어려웠다. 
“산자락에서 미녀를 보았다면 미녀를 보게 하는 눈이 있다는 뜻이지. 그렇게 되면 중요해지는 게 뭐야. 산자락의 모양새가 아니잖아. 산자락을 바라보는 마음의 눈이 되는 거지. 우리의 세상살이는 매사가 모두 그래.”
“…”
노인의 논리는 단순했다. 누구나 관심이 바깥의 사물에 맞춰져 있다고 믿지만 자기 내면의 욕구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언제 어느 순간이라도 마음의 평온함이 유지될 수 있으려면 방법은 간단하다고 했다. 욕구의 대상으로서가 아닌, 욕구도 일으킬 줄 아는 마음의 신비함에 눈을 떠야 한다고 했다.  
‘욕구도 일으킬 줄 아는 마음의 신비?’
사내는 자신도 모르게 눈앞의 노인을 유심히 바라보게 되었다. 자신으로서는 미처 짐작조차  못하던 못 생긴 나이 든 사람이면서도 사내를 사로잡는 인간으로서의 묘한 매력, 그것은 달리 말해 나이나 외모만으로는 판단하기 어려운 어떤 신비로움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사내의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구절이 있었다. 로마제국 말기 철학자이자 사상가인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이었다. ‘인간은 높은 산과 바다의 거대한 파도와 굽이치는 강물과 저 하늘의 맹렬한 태양 그리고 무수히 반짝이는 별들은 놀라 경탄하면서도 정작 경탄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자기 자신의 존재는 주목해보지도 않는다.’
경탄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한 마디는 노인도 공감이었다. 다만 그게 노인에게는 그 어디에도 실체가 없는 자기 자신의 마음이라는 점에서 좀 더 구체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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