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관선-6 / 질문과 답[1]
내관선-6 / 질문과 답[1]
  • 통불교신문
  • 승인 2018.11.2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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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참선을 시작하면 바로 잠이 드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참선할 때 가려우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질문과 답

내관선 창시자 육조사 대원방장
내관선 창시자 육조사 대원방장

여러분이 제출한 메모의 내용은 일반적인 질문이 대부분이다. 특별한 몸과 마음의 상태를 묻는 것이 아니라서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개별적인 질문과 대답을 하지 않고 함께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이하 내용은 확인들의 질문과 화상[和尙]의 답변이다).

 

문 : 저는 참선을 시작하면 바로 잠이 드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스승님의 가피(加被)를 구합니다. 또 졸음을 쫓기 위해 차를 마셔도 되는지요?

답 : 좌선을 하면서 호흡을 지각하기 시작하면 얼마 후에는 바로 잠이 드는 사람이 있다. 몇 가지 대책을 말하겠다.

첫째, 몇몇 도반은 확실히 신체가 허약하다. 이런 사람은 충분한 수면을 취해야 한다.

둘째, 계속해서 강조하지만 호흡을 지각하는 것이다. 나는 방관자로서 호흡이 거칠면 거친 것을 지각하고 가늘면 가는 것을 지각한다. 코 속의 섬세한 느낌도 모두 지각해야 한다. 하지만 정신이 몽롱해져서 지각하기 힘들다면 의식적으로 심호흡을 몇 번 하라. 그러면 비강 속의 섬세한 느낌이 다시 명확해지면서 졸음은 사라진다. 그때 다시 호흡을 지각하되 호흡을 주도하지는 말라. 절대로‘나’가 호흡을 인도하거나 심호흡을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셋째, 오늘 오후에 이미 지적했지만, 좌선할 때만 지각하는 것이 아니다. 걸을 때도 지각해야 한다. 처음에는 능력이 모자라서 동시에 많은 것을 지각할 수 없으므로 손을 지각하지 않고 발만 지각한다. 즉, 걸을 때 손은 뒤나 앞가슴에 놓고 발의 느낌만 지각한다. 릉파탠과 릉파통 존자가 가르친 정념동(正念動) 속의 선은 일정한 규칙이 있으니, 하나하나의 동작을 하는 순간에 즉각 지각하는 것이다. 이 방법 외에 차나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억지로 졸음을 쫓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다른 도반은 세 번째 호흡 후에 천천히 혼침에 빠진다고 하는데, 역시 앞서 말한 방법을 사용하기 바란다.

문 : 대원 박사님의 선 수행 지도는 아주 좋습니다! 모든 수행자들에게 어록을 한 부씩 나누어주면 수행에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답 : 그럴 필요 없다. 그것 역시 언어의 상(相)과 문자의 상에 집착하는 것이다. 수행을 지니는 데는 한마디의 말도 기억할 필요가 없다. 여래가 그렇게 많은 말씀을 설했지만, 수행자가 기억만 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앵무새가 말을 배우는 것과 같다. 우리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지혜의 원천을 발굴하고 신령한 지혜를 배워야 한다.

사실 수행자는 배운 대로 실천해서 심성에 갖춰진 본래의 지혜를 열면 된다. 10일간의 짧은 수행으로 기초를 다지면 향후에 폐관(閉關) 수행을 할 수 있다. 비교적 긴 45일이나 90일의 수행으로 각자의 상황에 따라 구체적인 지도를 할 수 있다.

문 : 참선할 때 가려우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답 : 가려움의 실상은 무엇인가? 얼굴이나 다른 부위가 가려운 것은 일단 우리의 능력이 모자란 것이므로 계속해서 호흡을 지각해야 한다.‘내관(內觀)’이란 바로 이 순간 몸과 마음의 현상을 여실히 관찰하는 것으로서 가친 실상(實相)에서 점차 미세한 실상으로 들어간다. 우리가 이 미세한 오염을 없애려면 어디서나 존재하는 아견과 아집을 여의어서‘나’가 주도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만약‘나는 한 곳에 아주 가렵다’고 느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가려움을 지각하기만 하면 된다. 가려움을 하나의 느낌으로 지각할 뿐이다. 가려움은 자연스러운 오온(五蘊)의 변화고 기맥(氣脈)의 변화일 뿐이다.

가려움을 지각하고 있으면 점차 기맥의 변화도 사라진다 ─ 일체가 무상이라서 사라진다. 여전히 가려워서 긁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좋다. 다만 지각을 앞세워야 하므로 그 과정에서도 지각을 유지해야 한다. 언제 어디서나 지속적으로 지각하면서 좋고 나쁨을 분별하지 말고 주관적인 판단을 더하지 말라.

문 :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제대로 앉지 못하고 옆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몇몇 사람이 좌석을 바꾸려고 했지만 빈 좌석이 몇 개 되지 않아 힘듭니다.

답 : 옆의 도반이 다리의 자세를 빈번히 바꾸거나 기침을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신은 미워하는 마음이든 도피하는 마음이든 일으키려고 하지 않는데 무엇이 그렇게 하는 것인가? 바로 아집이고 아견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무엇을 수행하고 있는가? 무아를 수행하고 있다. 내관에는 세 가지 성취가 있으니, 바로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이다. 그런데 당신의 아상(我相)이 이토록 두드러진다면 반대로 가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마음속에 미워하는 염두가 일어나도 자기 자신을 배척하지 말라.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냥 지각하는 것이다. 마음속에 싫어하고 미워하는 염두가 일어남을 지각하고 이 자리를 피하려는 마음이 일어나고 있음을 지각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염두는 결국 사라질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이렇게 지각을 하면 정념(正念)과 진념(眞念)을 유지하여 본래의 지혜와 상응한다.

어떤 것도 탐내지 말고 배척하지도 말고 지각만 하라. 이 지각에서 경찰이 자신의 업무에 충실하면 망념의 도둑은 들어오지 못한다. 설사 망념이 나타나도 즉각 그 정체를 간파해서 바로 잡을 수 있다. 그러니 망념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음속의 화내는 염두, 싫어하는 염두, 절망하는 염두, 의심하는 염두 등을 모두 두려워하지 말라. 그냥 여실하게 염두가 나타나는 것을 지각하라. 이렇게 지각하면 정념의 경찰이 망념의 도둑을 잡는다.

내관선을 할 때는 억지로 억압하지 말라. 지(止:사마타)는 억압이 아니라 평정(平靜)이다. 망념이 세차게 일어날 때는 억압하지 말고 여실히 직각하면 자연히 고요해지는데, 이것이 바로 지(止)이다. 정진을 잘 하면 마음은 매우 안온하다. 푸른 하늘처럼, 평정한 호수처럼 아주 고요해지면서 주변의 모든 사물을 진실하게 비춘다. 그러니 억압할 생각을 일으키지 말라.

관(觀)이란 교리를 운용하여 사유하는 것이 아니다. 사고하거나 분석하면 긴장하게 되고, 긴장하게 되면 쉽게 피곤해진다. 사실 관은 그냥 깨달아[覺照] 비추는 것이지 분석도 없고 추리도 없고 사유도 없다. 말하자면 범부의 제6의식의 활동이 없는 것이다. 오로지 지속적으로 깨달아 비출 수만 있다면 환희로 충만하면서 정념(正念) 속에 자재하게 된다. 일체법이 모두 마찬가지다. 소승만이 아니라 대승의 현종(顯宗)과 밀종(密宗)도 모두 똑같이 말하고 있으며, 선중에서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미친 마음이 쉬면 쉼 자체가 바로 보리이니, 진리를 구하려 하지 말고 오로지 견해(見解)를 쉴 뿐이다.”

왜 그런가? 견해 속에 바로 아집과 법집(法執)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쉬는가? 깨달아 비추고[覺照] 깨달아 아는[覺知] 것이다. 금강승(金剛乘)의 대원만법(大圓萬法)에서 수행하는 것도 마찬 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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