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밀양 초동면 검암리 용주사 대나무 숲
[기자칼럼] 밀양 초동면 검암리 용주사 대나무 숲
  • 정두영 경남취재본부장
  • 승인 2018.11.17 11: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원풍경에 둘러싸여 있는 듯 없는 듯 자리
승가의 도덕성 성찰하고 본래 자리 찾아가는 것이 중요
서로 협동과 융화를 도모해 나갈 것을 가르치고 있다

낙동강을 등지고 밀양 수산들판을 내려다보며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용주사가 있다.

높은 산은 아니지만 도로에서 조금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용주사는 대나무 숲에 쌓여있다.

대나무 숲 속에 자리한 밀양 초동면 용주사
대나무 숲 속에 자리한 밀양 초동면 용주사

작은 암자이지만 역사는 오래된듯하다.

원래 통도사 말사였다고 하는데 시골 전원풍경에 둘러싸여 있는 듯 없는 듯 자리 잡고 있다.

가을비가 부슬부슬 오는 지난 11월 15일, 용주사 주지 성원스님과 사천시 와룡산 회룡사 주지 덕산 스님이 만났다.

법당 앞에 웃고 있는 포대화상
법당 앞에 웃고 있는 포대화상

스님들은 만나면 무슨 예기를 할까? 궁금하기 짝이 없다.

부처님 당시에 어떠어떠했으리라. 지금은 어떠해야한다.

시시콜콜 한 예기가 오고간다.

정말이지 재미없다. 비호감이다.

그런데 두 스님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연신 웃음을 참지 못하고 대화를 이어간다.

불교는 종교가 아니다부터 시작해서 종교다로 결론지어진다.

철학이면 어떻고 종교이면 어떠하리?

철학이면 철학적으로 접근하여 미래지향적인 희망을 줘야하고, 종교이면 과거, 현재, 미래를 관하고 지금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알려줘야 한다고 하신다.

용주사 주지 성원스님
용주사 주지 성원스님

그런데 그 방법론에서 두 스님의 의견이 달라진다.

한 스님은 일심으로 주력염불을 권한다.

또 한 스님은 나부터 청정한 계를 지키고 정진 한다면 따라올 거라고 말한다.

어찌 보면 두 분 다 틀린 말이고 두 분 다 맞는 말이다.

이 모든 것이 종국에는 불교 전체적인 위기의식에서 자유롭지 않다는데서 기인한다.

비가 오는 날에 두 스님이 앉아서 나누는 담론이 그렇게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다.

재가불자들의 수행방법을 논하기 전에 두 스님은 승가의 도덕성을 성찰하고 다시금 본래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급변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느릿느릿한 부처님 법을 접목하기가 어려운지도 모른다.

이제 부처님 법도 그 시대적 변화에 익숙해져야 하는 것일까?

두 분 스님의 담론을 듣고 있자니 대나무속이 텅 빈 것 같이 내 속도 텅비어가는 느낌이다.

사천시 와룡산 회룡사 주지 덕산스님
사천시 와룡산 회룡사 주지 덕산스님

대나무에 대한 두 분 스님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성도한 후에 죽림원 속에 건립한 가람을 죽림정사(竹林精舍)라고 하고, 이 죽림정사가 불교 최초의 가람일 만큼 대나무숲(죽림)은 불교와 인연이 깊다.

대나무의 속이 빈 것과 위아래로 마디가 있는 특징을 들어 불가에서는 무심과 절도 있는 생활 태도를 비유하고 있다.

용주사
용주사

즉 불가에서 자주 인용하는 '대나무는 위아래로 마디가 있다'는 말은, 위아래의 질서와 절도를 지켜 누구나 그 질서 속에 안주해야 비로소 평화로운 사회가 이루어진다는 것인데, 대나무의 마디가 견고한 것은 비바람에도 굴복하지 않는 강인한 의지를 이름과 동시에 서로 협동과 융화를 도모해 나갈 것을 가르치고 있다. 고 한다.

[숫타니파타]에는 “자식이나 처에 대한 애착은 확실히 가지가 무성한 대나무가 서로 얽힌 것과 같다. 죽순이 다른 것에 잠겨 붙지 않는 것처럼 총명한 사람은 독립의 자유를 지향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했다.

용주사 대웅전 삼존불
용주사 대웅전 삼존불

[미린다왕문경]에 보면, “대왕이시여, 이를테면 파초, 대나무, 빈나마가 자기에게서 태어난 새끼에 의해 죽는 것과 같이, 대왕이시어 그와 같이 옳지 못한 행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한 행위에 의하여 파멸되어 악으로 떨어집니다.”

그러면서 두 분 스님은 대나무처럼 속을 비우고 살고 싶다고 한다.

“말은 그래 하지만 그게 쉽나요?”

용주사를 내려오면서 비에 젓은 대나무를 보며 반문해 보지만, 두 스님의 불교계의 앞날에 대한 걱정스러움은 당분간 해소되기 어려울것 같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