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얼마나 거짓에 막말을 많이 하고 살았으면 입을 마스크로 틀어막고 살라 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얼마나 서로 다투고 시기하고 미워했으면 거리를 두고 살라 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얼마나 손으로 나쁜 짓을 많이 했으면 어딜 가나 손 씻고 소독하라 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얼마나 열 올리고 살았기에 가는 곳마다 체온을 체크하고 살라 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얼마나 비밀스럽게 다녔으면 가는 곳마다 연락처를 적으라 하시겠습니까!
반성하며 잘 살겠습니다. ”
코로나19로 인하여 모든 사람들이 겪는 불편함은 말로 다 표현하기조차 힘들다.
코로나19에 대처하는 방법이 불편을 초래하는 것은 맞다. 더운 날씨에 마스크를 써야 하고, 친구를 만나도 마음 놓고 가까이할 수가 없다. 혹시나 하는 노파심에 연신 손을 씻고 또 씻는다. 식당이며 관공서, 카페, 심지어 절에 갈 때도 꼭 발열 체크를 해야만 한다. 그리고 전파 동선을 알기 위해 연락처를 남겨야 한다.
이런 불편한 노력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동안 자연이 준 혜택을 그냥 받고 누릴 줄만 알았지 함께 하려고 하는 마음은 없었기에 오늘의 위기는 우리가 자초한 것인지도 모른다.
지구 온난화, 해수면 상승, 오존층 파괴 등으로 자연재해는 날로 심화되고 있으며 이상기후로 인하여 지구촌 곳곳에서 자연재해가 발생하고 있다.
코로나 19는 이와 같은 총체적인 문제의 결과물인지도 모른다.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는 인종과 국경을 초월하고 있다. 하지만 그 대처능력의 유무에 따라 결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공평하게 주어져야 할 백신은 힘의 논리에 매몰되어 후진국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여기서 위의 기도문의 반성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거짓말하지 않고, 서로 다투지 않고, 나쁜 짓 하지 않고, 열 올리고 살지 않고, 서로 믿으면서 살아보면 어떨까?
코로나19로 인하여 가장 피해가 큰 곳 가운데 하나가 종교단체가 아닐까?
종교가 필요 없어지는 세상? 그런 세상이 오면 행복할까? 평화가 올까? 종교의 탈을 쓰고 혹세무민하는 종교는 종교가 아니다. 코로나19와 같은 펜데믹 세상이 와도 종교 간 갈등의 불씨는 사라지지 않고 상존한다.
아직도 정신 못 차리렷다.
어느 스님의 임종게가 떠오른다.
“괜히 왔다 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