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민주화운동, 한국에서 미얀마를 보다.
미얀마 민주화운동, 한국에서 미얀마를 보다.
  • 장정태 박사
  • 승인 2021.05.16 13:4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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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인에게 우리는 과도한 기대를 가졌다.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다.

처음 미얀마 사태가 발생했을 때 숨죽이며 한남동 대사관 근처에서 집회하던 사람들이 생각났다.

[장정태 박사 - 한국서민불교학회 회장                 - 전 서경대 외래교수                 - 철학박사(한국불교학 전공)
장정태 박사 - 한국서민불교학회 회장 
            - 전 서경대 외래교수 
                     - 철학박사(한국불교학 전공)

2003년 그들은 조국에 가족과 친지, 지인들을 위해 극도로 조심하고 있었다.

그 숨죽여 집회를 한 이유는 아웅산 수치와 미얀마 민주화였다.

미얀마 민주화는 곧 아웅산 수치를 연금에서 풀어주고 자유로운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였다.

그런 바람은 일정 부분 이루어졌다. 그리고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다.

기대했던 그녀의 행보는 만족스럽지는 못했다.

그래도 최악의 상황은 원하지 않았다.

[미얀마 민주화를 위한 지지모임에서@사진=한국서민불교학회 제공]
[미얀마 민주화를 위한 지지모임에서@사진=한국서민불교학회 제공]

나의 바람과 달리 군부는 쿠데타를 통해 질서를 어지럽혔다.

민주화를 지지하는 외국인, 그리고 미얀마 일부 시민은 UN의 개입을 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소망처럼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 배후에 중국과 러시아를 지목하고 있다.

UN 개입을 희망하던 일부 세력들은 미얀마로부터 독립을 원하는 소수민족과 함께 무장투쟁으로 운동 방향을 바꾸었다.

UN의 개입을 통한 해결은 처음부터 어려웠다.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불교국가에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유럽국가는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개신교, 천주교, 이슬람 국가였다면 지금과 다른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미얀마 주변국을 비롯하여 불교 인구가 어느 정도 형성되고 경제적 여유가 있는 한국, 일본불교는 개입할 여력이 없다.

한국은 미얀마와 교류에 있어 적극적이지 않았다. 원형불교를 수행하는 관광지 정도였다.

[한국 거주  미얀마인과 함께@사진=한국서민불교학회 제공]
[한국 거주 미얀마인과 함께@사진=한국서민불교학회 제공]

내전은 오랜 시간 국민을 죽음의 길로 내몰며 군부의 잔인성을 부각시키는 효과는 있지만, 정상적 방법은 아니다.

희생이 기대치보다 크기 때문이다.

한 여인에게 우리는 과도한 기대를 가졌다.

그녀는 남편과 자식이 있는 영국에서 평범한 삶을 원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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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연 2021-05-16 23:09:23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으로 미얀마에 대한 관심은 멀어졌다. 이제 서민들은 더 고달퍼져간다. 살인을 멈추고 대화를 권하기에도 양쪽 모두 멀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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