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담스님의 나옹왕사 답사길-5] 열반불사
[현담스님의 나옹왕사 답사길-5] 열반불사
  • 현담스님
  • 승인 2019.08.12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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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가 각기 흩어지면 어디로 갑니까?”

병진년(1376) 봄에 이르러 공사를 마치고 415일에 크게 낙성식을 베풀었다. 임금은 구관(具官) 유지린(柳之璘)을 보내 행향사(行香使)로 삼았으며, 서울과 지방에서 사부대중이 구름과 바퀴살처럼 부지기수로 모여들었다.

[서남사 대웅전 @ 통불교신문]
[서남사 대웅전 @ 통불교신문]

마침 대평(臺評)은 생각하기를, ‘희암사는 서울과 아주 가까우므로 사부대중의 왕래가 밤낮으로 끊이지 않으니 혹 생업에 폐해를 주지나 않을까하였다. 그리하여 임금의 명으로 스님을 영원사(瑩源寺)로 옮기라 하고 출발을 재촉하였다. 스님은 마침 병이 있어 가마를 타고 절 문을 나왔는데 남쪽에 있는 못가에 이르렀다가 스스로 가마꾼을 시켜 다시 열반문으로 나왔다. 대중은 모두 의심하여 목 놓아 울부짖었다.

스님은 대중을 돌아보고, ‘부디 힘쓰고 힘쓰시오, 나 때문에 중단하지 마시오, 내 걸음은 여흥(驪興)에서 그칠 것이요.’하였다.

52일 한강에 이르러 호송관 탁첨(卓詹)에게 말하였다. “나는 지금 병이 너무 심해 배를 타고 가고 싶소,” 곧 문도 10여 명과 함께 물을 거슬러 올라간 지 7일 만에 여흥에 이르러 다시 탁첨에게 말하였다.

내 병이 너무 위독해 이곳을 지날 수 없소. 이 사정을 나라에 말리시오.”

탁첨이 달려가 나라에 알렸으므로 스님은 신륵사(神勒寺)에 머물게 되었다. 며칠을 머무셨을 때, 여흥군수(驪興郡守) 황희직(黃希直)과 도안감무(道安監務) 윤인수(尹仁守)가 탁첨의 명령을 받고 출발을 재촉했다. 시자가 이 사실을 알리자 스님은 말하였다.

그것은 어렵지 않다. 나는 이제 아주 가련다.”

그때 한 스님이 물었다. “이런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스님은 주먹을 세웠다. 그 스님이 또 물었다.

사대가 각기 흩어지면 어디로 갑니까?”

스님은 주먹을 맞대어 가슴에 대고 오직 이 속에 있다.”하였다.

그 속에 있을 때는 어떻습니까?”

별로 대단할 것이 없느니라.”

또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대단할 것 없다는 그 도리입니까?”

스님은 눈을 똑바로 뜨고 뚫어지게 보면서, “내가 그대를 볼 때 무슨 대단한 일이 있는가하였다. 또 한 스님이 병들지 않는 자의 화두(不病者話)를 들어 거론하자, 스님은 꾸짖는 투로 왜 그런 것을 묻는가?”하고는 이내 대중에게 말하였다.

노승은 오늘 그대들을 위해 열반불사를 지어 마치리라.”

그리고는 진시(辰時)가 되어 고요히 돌아가시니 515일이었다.

여흥과 도안의 두 관리가 모시고 앉아 인보(印寶)를 봉하였는데 스님의 안색은 보통 때와 같았다. 여흥군수가 안렴사에게 알리고 안렴사는 조정에 고했다.

스님이 돌아가실 때, 그 고을 사람들은 멀리 오색구름이 산꼭대기를 덮는 것을 보았고, 또 스님이 타시던 흰 말은 3일 전부터 풀을 먹지 않은 채 머리를 떨구고 슬피 울었다. 화장을 마쳤으나 머리뼈 다섯 조각과 이 40개는 모두 타지 않았으므로 향수로 씻었다. 이때에 그 지방에는 구름도 없이 비가 내렸다. 사리가 부지기수로 나왔고, 사부대중이 남은 재와 흙을 헤치고 얻는 것도 이루 셀 수 없었다. 그때 그 고을 사람들은 모두 산 위에서 환희 빛나는 신비한 광채를 보았고, 그 절의 스님 달여(達如)꿈에 신룡(神龍)이 다비하는 자리에 서려 있다가 강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는데 그 모습은 말과 같았다.”고 했다.

문도들이 영골 사리를 모시고 배로 회암사로 돌아가려 할 때에는 오래 가물어 물이 얕지 않을까 걱정하였다. 그런데 비는 오지 않고 갑자기 물이 불어 오랫동안 묶여 있던 배들이 한꺼번에 물을 따라 내려갔으니, 신룡의 도움임을 알 수 있었다. 29일에 회암사에 도착하여 침당(寢堂)에 모셨다가 815일에 그 절 북쪽 언덕에 부도를 세웠는데, 가끔 신령스런 광명이 환희 비쳤다. 정골 사리 한 조각을 옮겨 신륵사에 안치하고 석종(石鐘)으로 덮었다.

스님의 수()57세요 법랍은 37세였으며, 시호는 선각(先覺)이라 하였다. 그 탑에는 ㅇㅇ스님은 항상 스스로 말하기를, ‘산승은 문자를 모른다하였다. 그러나 그 가송(歌頌)과 법어(法語)는 혹 경전의 뜻이 아니더라고 모두 아주 묘하다라고 씌어 있다.

이제 그것을 두 권으로 나누어 이 세상에 간행하게 되었으니, 스님의 덕행은 진실로 위대하다. 실로 이 빈약한 말로 전부 다 칭송할 수 없지만, 간략하게나마 그 시말(始末)을 적어 영원히 전하려는 것이다. 삼가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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