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왕자 정중무상선사 사리탑 중국 쓰촨(四川)성 펑저우(彭州)에서 찾았다.
신라왕자 정중무상선사 사리탑 중국 쓰촨(四川)성 펑저우(彭州)에서 찾았다.
  • 통불교신문
  • 승인 2019.05.09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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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성덕왕 셋째왕자로써, 출가하여 中선종 중흥조 마조도일스님의 스승
오백나한에 달마와 함께 올라, 中불교계서 높은 위상 보여주고 있다

최근 최석환(62·사진) 한국국제선차문화연구회 회장은 중국에서 선종불교의 성자 무상선사의 사리탑을 1200년만에 찾았다고 문화일보를 통하여 밝혔다.

문화일보에 따르면, 신라 성덕왕 셋째왕자서 출가하여 中선종 중흥조 마조도일의 스승이며, 오백나한에 455 정중무상존자로 달마와 함께 올라있는 선종불교의 무상선사 사리탑을 찾았다고 밝혔다.

[▲  ① 금화사 두타원에 훼손된 채 남아 있는 무상선사 사리탑. ② 훼손되기 직전의 무상선사 사리탑 사진. ③ 1200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무상선사 습골사리. ④ 금화사기 비석에 새겨진 ‘김두타’(무상선사). ⑤ 오백나한도를 통해 복원한 무상선사 초상. 최석환 회장 제공 @ 사진자료 문화일보 캡쳐]
[▲ ① 금화사 두타원에 훼손된 채 남아 있는 무상선사 사리탑. ② 훼손되기 직전의 무상선사 사리탑 사진. ③ 1200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무상선사 습골사리. ④ 금화사기 비석에 새겨진 ‘김두타’(무상선사). ⑤ 오백나한도를 통해 복원한 무상선사 초상. 최석환 회장 제공 @ 사진자료 문화일보 캡쳐]

최석환 회장은 中쓰촨성 펑저우 금화사서 무상선사의 사리탑을 첫 확인했으며, 앞으로 무상선사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 되어한다고 했다.

무상선사는 신라 성덕왕 셋째왕자로써,  출가하여 中선종 중흥조 마조도일스님의 스승이었다고 햇다. 오백나한에 달마와 함께 올라, 中불교계서 높은 위상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무상선사의 이름은 ‘김두타’ 로 현존 사실을 확인하였으며, 무너졌지만 목단문양 등이 남아있고, 팔각원단형 탑은 韓불교 형식을 띄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문화일보에 소개된 무상선사에 대한 보도내용이다.

신라의 구법승으로 중국 선종의 중흥조인 마조도일(馬祖道一)의 스승으로 기록돼 있는 무상선사(無相禪師·684∼762)의 사리탑이 중국 쓰촨(四川)성 펑저우(彭州)에서 발견됐다.고 밝혔다.

지난 2001년 중국 불교의 성자로 추앙받는 오백나한(五百羅漢) 중 455번째 조사(祖師)가 무상선사인 사실이 확인된 뒤 이번에 사리탑까지 발견됨에 따라 다소 도외시돼온 무상선사에 대한 불교학계의 연구가 뒤따를 전망이다.

무상선사가 중국 오백나한에 포함된 것을 확인하는 등 무상선사 행적 찾기와 연구에 전념해온 최석환(62·사진) 한국국제선차문화연구회 회장은 “지난달 24일 펑저우 단징산(丹景山) 금화사(金華寺)의 김두타원(金頭陀園)에 10여 년 전 훼손된 채 방치된 20여 기 사리탑 중 무상선사의 사리탑을 최초로 확인했다”고 17일 밝혔다.

최 회장은 “무상선사의 오백나한 발견 이후 무상선사의 열반지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올 초 단징산에 무상선사 사리탑이 김두타(金頭陀)란 이름으로 현존하는 사실을 알게 됐으며, 2개월 뒤 다시 현지 조사과정에서 무상선사가 입적한 사찰이 금화사라는 것을 처음 확인했고 현존하는 사리탑을 1200년 만에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는 “비록 무너져 있긴 했지만, 사리탑에는 목단(牧丹) 문양 등 1000년 전 문양들이 여전히 선연하게 남아 있었다”고 전했다.

최 회장에 따르면, 10여 년 전까지 김두타원의 24기 사리탑 중 무상선사의 사리탑이 정중앙에 모셔져 있는 모습을 당시 사진과 금화사 스님들의 증언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펑저우시 당국이 중국의 국화(國花)인 목단의 본고장인 단징산의 자연경관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사리탑 군을 무너뜨렸다. 다행히 사리탑이 훼손될 당시 금화사 스님들이 사리탑 석함에 들어 있는 사리를 바로 수습해 사리함을 만들어 보존해왔다. 최 회장은 “금화사 주지 훙우(宏悟) 스님의 도움으로 수습된 무상선사의 사리도 친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훙우 스님은 “금화사는 신라의 김두타(무상) 선사가 말년을 보낸 곳이다. 당초 당(唐) 현종의 여동생인 금화 공주가 금화행궁으로 지었는데, 무상선사에게 감화돼 금화사로 바꾸었다. 무상선사 입적 후 이곳에 사리탑이 세워졌다”고 사리탑 역사를 설명했다고 최 회장은 전했다. 금화사 경내에 있는 ‘금화사기(記)’ 비석에도 이 같은 내용과 함께 “김두타가 절을 창건해 총림을 이뤘다”고 새겨져 있다.

무상선사가 금화사 등 펑저우 현지에서 ‘김두타’로 불려온 사실도 처음 확인됐다. 이는 무상선사가 당대 중국인들 사이에 불교의 고행적인 수행법 중 하나인 두타행(頭陀行)을 실천한 스님으로 각인돼 있음을 보여준다. 금화사가 사찰의 내력을 소개한 팸플릿에는 “김두타는 법명 무상, 속성은 김씨, 당대 신라국 성덕왕의 셋째 왕자로 신라에서 출가해 개원(開元·당 현종 때 연호) 16년에 바다를 건너 당나라에 이르렀다. 김두타를 김화상(金和尙), 김선사(金禪師)로도 불렀다”고 기록돼 ‘김두타’가 ‘무상선사’임을 최종 확인할 수 있었다.

수습된 사리와 사리탑의 사진을 살펴본 강순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사리만 수습해 보관하는 한국 불교와 달리 무상선사는 뼈와 분골을 모두 수습하는 ‘습골사리’의 형태로 보관됐다”며 “이는 중국 불교의 일반적인 사리 수습 형태로 보인다. 한국 불교의 경우 덕숭문중의 수덕사에서 습골사리의 전통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사리탑에 대해 “중국의 사리탑이 사각 형태가 많은 데 비해 무상선사의 사리탑은 한국 불교의 전통적인 ‘팔각원단형’의 형식이다. 이는 중국 당(唐)대의 양식”이라고 설명했다.

무상선사는 당나라 현종 때인 728년 중국에 건너가 쓰촨성 일대에서 활약하면서 초기 선종의 대표적 계파인 정중종(淨衆宗)을 일으켰다. 오백나한 중 선종의 초조(初祖)인 달마대사가 307번째로 모셔진 반면 한국 불교가 선(禪)의 계파로 받드는 육조 혜능(六祖 慧能)과 마조도일은 포함돼 있지 않아 무상선사의 중국 불교에서 위상을 가늠하게 한다. 신라 구산선문(九山禪文) 가운데 7개 파도 무상선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연구도 있다. 

무상선사는 차(茶)에도 조예가 깊었다. 최 회장은 “펑저우시의 종교문화를 담당하는 민종국(民宗局)이 사실상 방치돼온 무상선사의 사리탑 복원계획을 세우고 있다”며 “오는 9월 금화사에서 한·중 무상선차연토회를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무상선사가 선종에 입문한 쓰촨성 영국사(寧國寺)에는 무상선사가 지선(智詵)-처적(處寂) 선사의 뒤를 이어 ‘목면가사(木棉袈裟·석가모니가 물려준 가사로 중국에는 인도의 달마대사가 들고 와 선종의 수제자에게만 물려준 것)’를 물려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당나라 시인 이상은(李商隱)이 851년 찬술한 ‘혜의정사사증당비(慧義精舍四證堂碑)’ 중 무상-마조-무주-서당의 영정을 모셨다는 기록은 인증(認證)의 계보로 달마의 선종이 무상선사에게 닿았음을 보여준다.그러나 중국 선종이 남종선으로 재편되면서 육조-남악-마조로 이어지는 법통설이 자리 잡았고 무상대사는 잊어졌다. 종교인류학자인 박정진 박사는 “1908년 발견된 돈황문서에서 ‘무상오경전’이 나오면서 무상선사는 망각에서 깨어났고, 중국의 세계적인 석학 후스(胡適·1891~1962)가 중국 선종의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으려고 노력하다가 사망하면서 끝내 빛을 보지 못했다”면서 “무상선사의 오백나한 발견과 이번 사리탑의 발견은 한국 불교사는 물론 동아시아의 선종사(禪宗史)를 다시 써야 할 만한 ‘사건’으로 평가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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