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가르침이 일상에 접목되는 현대화된 교육
4월 20일 창원 봉림사 “봉림불교대학”에서는 회주 운남스님을 모시고, 제24기 수계식을 봉행했다.
통일신라시대 구산선문 가운데 한 곳인 봉림사는 “봉림불교대학”을 운영하고 있는데, 봉림불교대학에서는 불교 기본예절과 기초교리, 불교개론, 감동적인 인간붓다의 위대한 삶과 사상의 부처님 생애, 반야심경, 금강경 등 경전, 한국불교의 역사와 불교문화 등을 강의하고 있다.
이번에 제24기는 불교기초교육을 마치고 수계식 봉행, 수계증을 받고, 봉림사 사찰 기둥이나 벽에 붙어있는 주련(柱聯)과 벽화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었다.
24기 학생 가운데 한명은 “대웅전 안에 모셔진 탱화의 유래 등을 들려주는 특별한 시간이었다”고 말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이 일상에 접목되는 현대화된 교육인 것 같다”고 했다.
특히 벽화 중 조리(早離)와 속리(速離)에 대한 가슴 아픈 이야기가 담겨있는데 대하여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무인도에 버려진 형제(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은 전생에 조리와 속리라는 이름을 가진 형제로 태어났다.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표독한 서모 밑에서 온갖 학대를 받았는데, 아버지가 멀리 타국에 돈 벌러 떠나자 일곱 살인 형 ‘조리’와 다섯 살짜리 동생 ‘속리’는 계모의 꾐에 빠져 바다 저 멀리 아득히 떨어진 무인도에 내다 버림을 당한다. 어린 형제는 추위와 굶주림에 서로 부둥켜안고 울고 또 울다가 마침내 기진맥진하여 쓰러진다. 형 조리는 열 손가락을 돌로 쳐 흐르는 피로 누더기가 된 옷에 부모 잃고 버림받은 어린 영혼을 가슴에 사무친 아픔들을 대비의 발원으로 승화시켜 대비원(大悲願)을 써 내려갔다.』
“우리 형제가 죽으면 부모 없는 설움으로
슬픔에 젖은 사람에게는 대성자모 자부가 되고,
외로운 사람에게는 친절한 벗이 되고,
사랑하는 형제가 되며 헐벗은 사람에게는 옷이 되고,
굶주리는 사람에게는 밥이 되고,
병고의 중생들에게 명의가 되고,
양약이 되어 고쳐주고,
부처님을 만나지 못하는 중생에게는
부처님의 몸을 나누어 구제하겠노라”고 서원했다.
『열 손가락이 문드러지도록 저 중생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즐거움을 주겠다는 손고여락(損苦與樂)이 되겠노라고 다짐했다고 한다. 열 발가락이 짓이겨지도록 시방세계를 쫓아다니며 고독한 영혼의 고통을 뽑아주고, 외로움을 달래어 기쁨을 주는 발고여락(拔苦與樂)이 되겠노라 발원했다고 한다.
바짝 말라 이미 미라처럼 되어버린 아우 속리 가슴에서 흘러나온 서른두 가지 발원도 함께 다 쓰고는 형제는 꼭꼭 부둥켜안고 대비원을 성취하는 기막힌 생을 마감했다.
외국 갔다 돌아온 아버지가 백방으로 두 아들의 행방을 찾아다닌 끝에 바다를 건너 무인도에 왔을 땐 두 무더기의 하얀 유골 뿐 이었다.
후처와 작당하여 죄악을 자행한 뱃사공은 호기를 잡은 듯 뺑소니를 치건만 가건 말건 관심 밖의 일로 흘려보내고 자식의 유골을 품에 안고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아버지도 비장한 심경으로 조약돌 사이에 널려있는 어린 자식들의 누더기 천 조각에 쓰인 피의 유서인 “대비발원문”을 보고, 자신의 수족을 모조리 부수어 붓을 삼아 사십팔원의 혈서를 쓰고는, 불쌍한 두 아들의 뽀얀 백골을 찢어지는 가슴에 품고 절해고도에서 한 줌의 흙이 되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아버지는 후일 아미타여래이며, 조리와 속리는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다.
한편 이날 수계식을 봉행한 “봉림불교대학”은 창원에서 가장 먼저 생긴 불교대학 가운데 하나로 많은 졸업생을 배출하여 지역사회에 자원봉사 및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