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가 남석 선생의 주유천하(周遊天下)
서예가 남석 선생의 주유천하(周遊天下)
  • 배성복 기자
  • 승인 2018.12.30 15: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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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석 선생이 주유천하를 통해서 이루고자 했던 것은?

천하 각지를 두루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것을 주유천하라고 했다. 주유천하란 말은 공자의 주유천하에 나오는 말이다.

지축미동 선후불명 , 주유천하 오역미진
지축미동 선후불명 , 주유천하 오역미진

공자의 나이 56, 최 전성기에 공자는 대사구행섭상사가 되었다. 이때 제나라에서 공자가 노나라의 관리가 되어 정치를 한다는 말을 듣고 미인계를 썼다. 이에 넘어간 계환자와 정공에게 실망하고 공자는 주유천하를 떠났다.

이리 저리 떠돌아, 공자의 나이 65세 때 14년만의 유랑생활 끝에 고향에 돌아왔다. 이후 공자는 벼슬길의 유세를 멈추고 학문과 교육에 전념했다.

이렇듯 공자의 주유천하 역정을 살펴보면, 공자라도 자기가 타고난 운명은 어쩌지 못하는 듯하다. 그래서였을까 이후 공자는 <周易> 공부에 전념했다. 그리고 <春秋>, <禮記>, <詩經>, <書傳>의 편찬과 저술에 정력을 쏟았다

우연 같지만 남석 선생도 주유천하를 떠났다.

2018 밀양 문화재단 초대전
2018 밀양 문화재단 초대전

남석선생은 경남 밀양시 청도면 고법리에서 6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1학년이 되던 해 해방을 맞이한다. 초등학교 6년 동안 늘 수석을 차지했던 그는 6학년 때 다른 6학년 학생의 과외를 할 정도로 영민했다고 한다. 초등학교를 마친 후 밀양 무안면에 있는 무안중학교에 진학을 한 그는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 친구와 함께 가출을 해서 미군들의 심부름을 하는 하우스보이 생활을 시작하기도 했다.

남석의 유년시절은 말 그대로 질풍노도의 시절이었다. 소 판돈을 훔쳐 가출을 했다가 잡힌 일, 창녕에 있는 누나의 설득으로 다시 돌아오고, 성적이 중간으로 떨어져 부산 경남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청소당번을 잊어버려 유도를 하던 동급생에게 이가 부러지도록 얻어터져 그 복수일념으로 유도, 태권도, 권투, 레슬링 등 운동에 몰두한 시절이 있었다. 3때는 아마레슬링 선수로 대회에 출전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2018 밀양문화재단 초대전에서 이상조 전 밀양시장이 찾아와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있다.
2018 밀양문화재단 초대전에서 이상조 전 밀양시장이 찾아와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있다.

그러다 3학년 특별활동시간에 서예반을 들러 학생들이 붓글씨를 쓰는 것을 보고 남석도 초등학교 때부터 천자문 명심보감을 배웠는지라 붓을 보니 반가워 한 자 쓰고 교실을 나왔는데, 서예반을 지도하던 선생님이 마침 스님이라 뒤에 알고 이 학생을 찾아오라고 해서 갔더니 글씨를 본격적으로 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했다.

그렇게 남석은 청남 오제봉 선생과 인연을 맺게 되고 21세 때 제8회 대한민국대전에서 최연소로 입선을 했다.

남석은 그렇게 고교시절을 보내고 부산사범대 미술과에 진학, 졸업한 남석은 생계를 위해 미술교사가 되었지만 늘 학교의 부정과 불합리한 경우를 참지 못하여 15년교사 생활 동안 학교를 15곳 옮겨 다녔다.

2018 밀양문화재단 초대전을 찾은 지인
2018 밀양문화재단 초대전을 찾은 지인

그러다보니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고 방황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리하여 세속의 삶에 대한 의미를 찾지 못하고 출가를 결심, 성철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불가에 들기도 했다.

그러나 남석은 그마져 오래지 않아 속퇴하고 말았다.

오랜 방황 끝에 남석이 마음을 둔 곳이 바로 글씨였다.

글씨를 쓰면서 자신의 변화를 관조해 보고, 인성 덕성 등 정신적인 것이 없으면 아무것도 쓸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단다. 지식과 지혜는 다르다. 지혜는 배워서 되는 게 아니고, 못 배우더라도 지혜로운 사람이 있다. 강원도에서 화전을 일구고 사는 사람들은 배우지 못했지만 오히려 더 지혜롭다. 사람이 많이 모여 사는 도시에 사는 사람일수록 인간성을 상실한 사람이 많다.

1963년 남석은 현몽을 받는다. 새벽꿈에서 깨어나 할아버지가 일러준 글씨를 부채에 써서 현불사 설송스님을 찾아갔다. 지축미동 선악불명이란 글씨다.

일정(一鼎) 이창수 씨와 합작품 성학십도 병풍앞에서
일정(一鼎) 이창수 씨와 합작품 성학십도 병풍앞에서

설송큰스님은 대구에서 4시간 거리에 있었지만 연락 없이 가도 그 자리에 계셨으며 독대를 허락하여 주었다. 그 영향으로 금강경, 화엄경, 반야심경, 법화경을 사경하게 되었다. 한다.

설송스님은 글씨가 쓰인 부채를 보고는 아무 말 없이 10분간 남석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는 어느 경전에도 없는 글이다. 그러면서 남석은 공부하면 무엇이 열릴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선악 보다는 선후로 하는 것이 어떠냐고 되물어왔다.

그리하여 지축미동(地軸微動)하니 선후불명(先後不明)이라이 여덟 글자가 나오게 되었다.

지축은 조금씩 움직인다. 지구상의 모든 것은 움직이고 있다. 지구상의 동식물이 약간씩 돌았다. 정상이 아니다. 지축이 미동하니 약간씩 정신병자가 되었다. 그래서 선. 후를 모른다.

종교인 예술인들이 바로잡아줘야 한다. 지금은 종교인 예술인도 다 갔다. 27년 칩거를 했다 병원 가는 것 빼고 아양교를 건너지 않았다. 남석은 둘이다. 둘인 줄 모르고 산다.

캠핑카에 벼루 먹 붓을 싣고 탁발하듯이 길을 떠났다.

전국유람이나 해보자는 심산으로 떠돌다 불영 계곡에 정박했다. 그런데 그 옆에 어떤 작자가 예술가는 사기꾼이다.”라며 욕을 심하게 해대었다. 자세히 들고 보니 화가는 물감으로 장난치고, 문인들은 글로서 장난치고, 서예가는 글씨로 장난치고 있다는 것이다.

글 좀 쓴다고 자부하고 다녔는데 아무것도 아님을 알았다. 새벽에 어떤 할아버지가 나타나 뭐 하러 다니느냐 돌아가라고 했다.

잠에서 깨어나 정신을 차려보니 유명한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아니었다. 거기서 남석은 깨달았다고 한다. “주유천하(周遊天下) 해보니, 오역미진(吾亦微塵)이라. “ 날 새면 집에 돌아가자고 했다.

周遊天下해보니 吾亦微塵이라!”

내가 최고인 줄 알고 천하를 떠돌아 보니, 나 또한 작고 변변치 못한 물건, 즉 흙먼지처럼 작은 티끌에 불과하더라.

밀양문화재단 초대전 성학십도 작품 앞에서
밀양문화재단 초대전 성학십도 작품 앞에서 우측부터 밀양시장, 남석선생, 이창수 서예가

그리하여 팔공산방에 틀어 박혀 글씨에 전념하게 된다.

세계최대의 법화경 병풍은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대작이다. 그러면서 많은 제자들을 길러냈다.

지난 번 밀양 전시회 때는 그의 제자 일정(一鼎) 이창수 씨와 합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퇴계선생의 성학십도가 바로 그것이다.

성학십도(聖學十圖)1568년 겨울, 퇴계가 조정을 떠나면서 선조 임금에게 올린 글로, 제왕이 감당해야 할 심학(心學), 즉 마음의 경작법을 그림 열 장으로 정리한 것이다.

남석 선생과 그의 제자 이창수 씨의 합작품(성학10도 12폭 병풍)
[남석 선생이 서문과 두전을 쓰고, 그의 제자 (一鼎) 이창수씨가 본문을 써서 합작한(성학10도 12폭 병풍)]

성학십도는 퇴계 선생이 방대한 유교 고전의 숲을 뒤져 핵심 텍스트를 선별, 순서를 매기고, 거기에 자신의 의견을 덧붙였다. 각각의 그림들은 인간이 어디에서 왔는지,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왜 이렇게 부자유한 존재로 전락하게 되었는지, 또 그 소외를 극복하기 위한 지식과 기술을 어떻게 연마해야 하는지를 일러주고 있다.

남석선생과 그의 제자 일정(一鼎) 이창수씨가 합작한 성학1012폭 병풍은 퇴계선생의 지혜가 녹아 있다.

이 병풍을 통해 고전에서 느끼는 치유와 성장의 비밀을 간직한 구원의 매뉴얼임을 발견하게 된다.

이 성학10도 병풍은 실존적이다. 풍요의 한 가운데 기쁨은 없고, 삶이 어디로 떠 밀려가는지 막막하기만 한 현재를 사는 우리 모두, 이 오래된 학문(學問)과 현대에 서예대가의 글씨로 재조명되는 영혼의 치유법과 삶의 기술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남석 선생과 그의 제자 이창수 씨의 합작품(성학10도 12폭 병풍)
[남석 선생이 서문과 두전을 쓰고, 그의 제자 (一鼎) 이창수씨가 본문을 써서 합작한(성학10도 12폭 병풍)]

 

-남석 이성조(南石 李成祚)

-호 : 남석, 공산, 공산, 남인, 석인, 남도인, 석도인, 공산인, 공산예인, 공도인, 설산거사, 설도인

-당호 : 무심헌, 무아실, 송림묵연재

-1938 33일 인시 경남 밀양군 청도면 고법리 하촌에서 출생

-1956 청남 오제봉선생 입문

-1959 국립 부산사범대학교 미술학과 3회 졸업

-1981 한미수교 100주년기념 LA

-1981 한미수교 100주년기념 뉴욕전

-1991 11회 대구광역시 문화상 수상

-1991 대구경북서예가협회장

-2000 초대작 168곡 병풍 제작

-2000 묘화법화경 전72869384자 완성

-2007 33회 개인전 (고희전, 대구문화예술회관)

-2014 35회 개인전 (희수전, 대백프라자갤러리)

 

- 일정 이창수 (一鼎 李昌秀)

- 아호 : 일정(일정), 정급

- 당호 : 묵노헌. 달구당

- 1964년 대구 출생. 영남대학교 무역학과 졸업

- 남석 이성조 선생 문하 입문

- 개인전 8회(1993~2006)

- 대구미술발전인상 수상

- 대한민국 서예대전람회 초대작가, 심사위원 역임

- 영남미술대전 운영위원장 역임

- 현) 대구미술협회 부회장

       한국미술협회 이사

       일정서예.전각연구실 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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