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서유기를 통한 마음의 평온함
3. 서유기를 통한 마음의 평온함
  • 김계유
  • 승인 2018.12.27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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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실체가 없음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 이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삶....

“일상적인 마음의 평온?”
 그렇게 반문하면서 노인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해 보면 노인으로서도 쉽지 않은 삶의 문제였다. 집착하는 마음만 없으면 된다는 충고도, 색(色)이 공(空)이라는 교훈도, 분명 이론으로는 공감하지만 자신에게는 언제나 그림 속의 떡이었다. 
 “쉽지 않더라고, 꼭 손오공 한 가지였지?
 노인은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문득 서유기를 읽어 봤는지 물었다. 그러나 대답을 기대하는 질문은 아니었다. 사내가 미처 대답도 하기 전, 자신은 대여섯 번쯤 읽었을 것이라고 했다. 작가 오승은의 문장력 덕분이었을까? 노인이 느꼈던 호기심의 배경은 단순했다. 서유기의 전체적인 줄거리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등장인물들의 독특한 캐릭터들의 힘이었다. 
  천방지축 자신의 재주를 믿고 날뛰는 원숭이 손오공(孫悟空)! 그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와 천궁(天宮)에서의 난동, 아둔해 보이면서도 돋보이는 개성을 부정할 수 없는 저팔계(猪八戒), 약삭빠르기로는 따라올 대상이 없으면서도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알아야 했던 사오정(沙悟淨), 거기에 불경을 구해 오기 위한 삼장법사 현장의 진지한 이미지까지 돌이켜 보면 모두가 자기 자신의 객관적인 일면들이었다.  그러나 그 뿐이었을까? 
  우화 형식의 풍자를 통해 독자를 일깨워주는 서유기 내용의 기묘함도 있었다. 그래서 시작된 노인의 화제가 등장인물의 이름에 숨어 있는 글자의 뜻이었다. 마치 변덕이 심한 자기의 마음을 떠올리게 하는 원숭이 손오공(孫悟空)! 나무는 잘 타지만 결국은 하찮은 재주에 지나지 않음을 인정해야 했던 손오공(孫悟空)! 노인에 의하면 손(孫)은 성이고, 오공(悟空)은 깨칠 오(悟) 빌 공(空)이 합해진 불교 공(空)도리의 상징이었다. 세상의 모든 만물이 서로를 의지해 있으므로 실제론 텅 비어 실체가 없다(空)는 그런 의미의 명칭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살면서야 쉬웠겠어?”
“…”
사내는 줄곧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나이 든 사람의 경험담을 듣게 되는 기쁨 탓만은 아니었다. 서유기를 읽은 적도 없었고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 따위의 개념에도 무식한 사내 자신이었다. 그러나 사내의 묵묵함에도 노인의 이야기는 그치지 않았다. 
 “읽어보았다면 알겠지만 서유기에서 느끼는 매력은…”
 노인의 기억으로는 공(空)도리를 표현하고 있는 다음 장면이었다. 삼장법사 일행이 법을 구해 마침내 인도에 도착하고 난 뒤의 일이었다. 죽음을 무릅쓰고 자신을 찾아온 그들 일행에게 부처는 글자 한 자도 찾아볼 수 없는 텅 빈 책 한권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것을 받아든 손오공이 소란을 피우며 부처님에게 항의했다. 
“글자가 한 자도 없는 이게 무슨 경전입니까?”
자기 자신의 재주만을 믿고 부처의 진실한 가르침조차도 이해하지 못해 난동을 부리는 손오공. 이는 본래 실체가 없음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 이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는 노인 자신의 평소 모습 한가지였다. 아무튼 그런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건네받은 삼장법사의 성과물이 지금의 합천 해인사에 보관된 팔만대장경이었다. 그렇지만 그 이치를 깨닫지 못한다면 그게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를 묻고 있는 노인이었다. 
“나무 판때기? 아마 그렇진 않을까?”
  필경 그럴 것이라고 단정하고 있는 노인의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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