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관선-2
내관선-2
  • 통불교신문
  • 승인 2018.04.21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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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
1) 법좌 아래서

이미 소개했듯이 이 수해어법은 소승(小乘)의 선법이지만 매우 단도직입적이다. 가장 주의할 점은 고요한 상태에서든, 움직이는 상태에서든 모두 지각(知覺)을 유지하는 것인데, 이는 아주 중요다! 일정에 따라 45분이나 60분 동안 좌선을 하고 15분 휴식을 할 때나 몸을 움직을 때도 지각을 유지해야 한다.

어제도 말했지만 수행의 핵심은 이완되어 있으면서도 깨어 있고, 느리더라도 꾸준히 정신하고, 마음을 집중하면서도 추호도 긴장하지 않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경행(經行)의 방법이 제일 좋다. 하지만 중국의 대승불교에서 행하는 선당(禅堂)의 경행과는 다르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선당 중심에 불탑이 있고 대중은 불탑 주위를 도는데, 가장 안쪽에는 젊은 비구, 밖에는 연로한 비구, 가장 밖에는 반수[班首:모임의 우두머리]와 주지화상[住持和尙]이 있다. 안쪽일수록 더 빨리 달려야 하고 동작이 아주 커서 옷자락을 휘날린다. 하지만 이 수행법에는 단지 각성 유지만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만약 좌선을 하면서 몸과 마음이 잘 적응하면 좌석에서 내려오지 않아도 좋다. 또 간단한 움직임을 할 때는 동작을 지각해도 되고 아니면 일어서서 걸어도 좋다.

경행할 때는 지각할 수 있어야 한다. 오른발을 들 때는 오른발 끝이 들리는 것을 지각하고, 앞으로 내디딜 때는 내딛는 것을 지각하면서 한 걸음 나간다. 발가락 부분이 먼저 땅에 닿고 발꿈치가 닿는 것도 지각한다. 이런 방식으로 하나하나 모두 지각한다. 처음에는 느릴 수 있지만 일부러 느리게 할 필요는 없다. 아주 정상적으로 지각을 하면 느리고 빠른 것은 당신의 각성에 따른다. 일반적으로 처음에는 느린 편이다. 그렇지 않으면 동작을 따라 지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불법을 많이 공부해서 지식으로는 많이 알고 있지만 진정한 각성이 일어나지 못한 경우가 흔한데, 그 근분 원인은 수행의 정진이 뒤따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처음 경행을 하는 사람은 천천히 하되 손은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 손을 지각하는 동시에 다리를 지각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렇게만 해도 무방하다. 차차 습관이 되면 정상적으로 길을 걸어도 지각이 따라올 수 있다.

물론 처음에는 지각이 따라오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럴수록 끈기 있게 천천히 해나가라. 특히 아집(我执)이 섞이지 않고, 를 개입시키지 않고 동작을 지각하고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법문을 섞어서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 사무장이 보낸 메모지를 보니 담() 경락을 손으로 치는 분이 있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가 담 경락을 치려고 해서 치고 있는가 있기 때문인데, 하지만 이 수행법은 순수하고 단도직입적이라서 다른 것을 섞을 필요가 없다. 앞서 말했듯이, 경행을 하면서 지각하기만 하면 된다.

몇몇 도반은 몸과 마음의 상태가 좋아서 좌선을 중도 포기하지 않고 45분을 쉽게 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 이 경우엔 앉은 자세에서 움직임을 지각할 수 있다. 하지만 좌선을 오래하다 보면 쉽게 몽롱해질 수 있기 때문에 움직임도 필요하다. 오전에 와 보니 약 반수의 도반들이 몽롱한 상태에 있는데, 이 수행법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2) 법좌 위에서

도반들이여, 참선 수행을 시작한 지 반나절이 지났다.

어제 저녁 이미 말했지만 이 수행법은 아주 간결하고 기본적인 방법이다. 바로 호흡을 지각해서 마음을 지각하는 것이다.

첫째, 호흡의 지각은 아주 간단하고 실용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는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라서 교파나 신앙과는 관계가 없다.

호흡은 누구에게나 생존에 필수적일 뿐 아니라 우리는 이 호흡에서 모든 법의 실상을 볼 수 있다.

둘째, 마음의 기()가 둘이 아니기 때문에 호흡의 지각이 바로 마음을 지각하는 것이다.

마음이 긴장하거나 들떠 있으면 호흡도 다급하고 거칠어지며, 마음이 조용하면 호흡도 안정되고 유연해진다.

셋째, 호흡을 지각하면 지금 바로 세 가지 근본 번뇌를 끊는다.

탐욕, 성냄, 어리석음의 삼독(三毒)이 모두 일어나지 않는다. 더 많이 호흡하겠다는 탐욕도 일어나지도 않고, 호흡을 미워하는 마음도 없으며, 호흡을 지각하면 어리석음도 사라진다. 따라서 호흡은 지금 이 순간 각성할 수 있는 방법이다. 호흡의 지각으로 마음속의 끝없는 중얼거림을 지금 즉각 끊으면 내적으로 마음을 벗어날 수 있다. 호흡을 지각하는 것이 바로 깨우침이고 보리심이며, 호흡을 지각하면 언제나 정념(正念), 정견(正見)에 있다. 호흡은 실제로 아주 간단한 방법이다. 하지만 아직 제대로 익히지 못한 분들이 있다. 이 수행법은 단순히 호흡을 지각하는 것이라서 그 범위가 코와 윗입술 사이의 한 점에 제한된다. 다른 곳에서 갖가지 느낌이 나타나면 그냥 지켜보기 바란다. 어깨가 아프거나 얼굴이 가렵거나 이마에 개미가 기어가는 것 같아도 그냥 계속해서 호흡을 지각하기 바란다. 정확하게 코와 윗입술 사이의 점에서 호흡을 지각하고 다른 감각은 그냥 내버려두면 자연히 사라진다. 왜 그런가? 넓은 범위에 주의력을 집중하면 지각은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대승불교를 비롯한 다른 법문을 많이 공부했어도 이번 참선 수행에는 섞지 말기 바란다. 호흡을 세는 방법도 사용하지 말고 주관적으로 호흡을 인도하지도 말아야 한다. 오로지 느리고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호흡을 하기 바란다.

나는 방관자로서 주시만 할 뿐 호흡을 인도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호흡할 때는 코 아래의 감각을 느껴야 하는데, 숨을 들이 쉴 때는 비강 속의 섬세한 느낌을 모두 지각하고 숨을 내쉴 때는 약간 뜨거운 것을 느낄 수 있다.

코 아래의 혈()인중(人中)’이라고 한다. 몸의 중심부위가 아닌데 어째서인중이라 하는가? 바로 독맥(督脈)과 임맥(任脈)이 교차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에서 집중력과 통찰력을 훈련하는 것이다.

처음 사흘은 계()()에 치중해서 마음의 집중력을 키운다. 하지만 이것이 목적은 아니다. 넷째 날부터 내관을 시작하고 진정한 위빠사나를 수행해서 곧바로 모든 법의 실상을 나타낼 수 있다. 하지만 처음 사흘 동안 기초를 잘 다지지 못하면 그 이후의 과정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으니, 아무쪼록 다른 법문과 뒤섞지 말고 복잡한 일도 하지 말기 바란다.

몇몇 도반은 메모지에 게송을 적기도 하는데, 자신의 느낌과 이해를 성급히 표현하려고 하지 말라. 아주 단순하고 이완되고 자연스럽고 천진하고 솔직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가장 거친 실상, 즉 호흡으로부터 지각할 뿐이지 마음을 긴장시킬 필요는 없다.

범부는 불법을 들어도 자기도 모르게 뭔가를 잡으려고 하며, 마음은 여의치 않은 일이 발생하면 바로 긴장하면서 얽매인다. 이 때문에 우리는 이미 무량겁(無量劫) 이래로 많은 번뇌를 쌓아 왔다. 그러나 호흡을 지각할 수 있으면, 즉 순수하게 호흡을 지각하면 바로 세 가지 근본 번뇌를 끊을 수 있다. 이 순수하고 오염되지 않는 상태는 아주 짧은 순간이라도 매우 큰 힘을 갖고 있다. 무량겁 이래로 축적된 갖가지 청정치 못한 상태에 충격을 가해서 커다란 폭발을 일으킨다. 그때 몸과 마음에 온갖 불편함이 나타나지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냥 호흡을 지각하면서 훈련을 계속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점차 어떤 일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이미 외부와의 모든 연락을 끊고 도반 간의 교류도 없는 상태라서 마음속에 갖가지 망념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압력솥의 음식이 빨리 익는 것처럼 이 호흡을 지각하는 방식을 통하면 신속히 자신의 마음을 바라볼 수 있다.

여러분은 모두가 지혜의 만찬을 만드는 우수한 요리사가 되기를 바란다. 마음을 분산하는 일을 찾지 말아야 한다. 정신이 맑으니 저녁에는 숙소에서 불교 개론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라. 가장 필요한 것은 실천이다. 이미 많은 법문을 배웠지만 정말로 번뇌를 끊었는가? 아니다. 지식 차원의 축적만 했을 뿐이다.

몇몇 도반들은 마치 대량의 황금을 뱃속에 삼켰지만 평범한 쌀밥을 먹으라고 하자 오히려 적응하지 못하고 쩔쩔매는 것 같다. 황금이 진귀하지만 뱃속에서는 몸을 해친다. 마찬가지로 불법은 고귀하지만 개념과 지식 차원에서 기억하는 것은 쓰임새가 없다! 운용하고 실천할 줄을 모르면 지적 장애만 더할 뿐이다.

이런 일화가 있다. 코살라국의 수도 사위성에서 젊은 청년이 부처님을 참배하였다. 그는 아주 독실한 신자라서 매일 저녁 부처가 급고독원에서 하는 설법을 듣고 감탄하고 환희했다. 하지만 그냥 듣기만 했을 뿐 일상생활 속에서는 전혀 실천하지 않았다. 그의 마음속에는 한 가지 문제가 오랫동안 잠복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부처님이 홀로 정사(精舍)에 계신 것을 보고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제자에게 오랫동안 한 가지 의문이 있어서 부처님께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

부처님은 대답했다.

그렇게 하라.”

청년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떤 사람은 불법을 공부한 후에 점점 즐겁고 자유로워서 일체가 좋아지는데, 또 다른 사람들은 전혀 변화가 없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처님께서 물었다.

너는 사위성에 거주하고 있는가? 말씨를 보니 현지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사실 저의 고향은 마갈타국의 수도 왕사성입니다. 저는 두 도시를 오가며 무역을 하는 상인입니다.”

이곳에 많은 친구들이 있는가?”

.”

그대가 친구에게 왕사성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주려면 어떻게 하겠는가? 먼저 바라나시에 도착하고 다음에 부다가야를 거쳐 최종적으로 왕사성에 도착한다고 말하겠지. 이렇게 친구에게 길을 가르쳐주면 친구가 바로 왕사성에 도착한 것인가?”

아닙니다. 그들이 직접 길을 가야 도착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일세! 부처가 열어 보여준 법은 반드시 스스로 실천을 해야 마음속의 번뇌와 고통을 진정으로 멸할 수 있네.”

여러분은 편안하고 이완된 상태에서 순수하게 호흡을 지각하기 바란다. 마음이 점차 집중할 수 있으면 인중에서 복부의 하단전(下丹田)으로 확장할 수 있다. 이처럼 집중력이 점점 더 커지면서 지각 능력이 강화되면 몸 전체를 여실히 지각할 수 있다. 들숨을 쉴 때 신체가 미세하게 팽창하는 것을 지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면 찰나찰나의 무상(無常)한 생멸(生滅)을 지각할 수 있다.

이렇게 점(), (), ()., ()으로 점차 정진함으로써 여러분은 10일간의 참선을 통해 내면의 실상을 탐구하는 양자물리학자가 되기 바란다. 마음속의 분노, 탐욕, 실망 등과 같은 번뇌의 쓰레기를 반야의 꽃으로 전환하는 정원사가 되기 바란다. 그리하여 탐욕, 성냄, 어리석음의 속박에서 해탈하여 진정한 평화와 기쁨을 누리기 바란다.

 

[통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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