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산 임휴사, 대구시민들의 휴식처로 각광
대덕산 임휴사, 대구시민들의 휴식처로 각광
  • 배성복 기자
  • 승인 2018.10.11 2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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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가는 가을을 만끽할 수 있는 가까운 절
역사의 현장, 위장에 좋은 약수가 흐른다.

대구시민들의 휴식처인 대구앞산과 대덕산은 예로부터 고려 태조 왕건과 관련된 이야기와 사찰들이 전해오고 있다. 한창 후백제의 견훤과 접전을 벌일 무렵 수세에 몰린 왕건이 이 곳 앞산에 이르러 은적사, 안일사, 임휴사 등지에서 머물면서 마음을 다스리고는 훗날‘고려‘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된다.

가을이 깊어가는 임휴사 대웅전
가을이 깊어가는 임휴사 대웅전

임휴사는 일찍이 신라 말엽인 921년(경명왕 5년)에 중국 당나라에서 불법을 수행하여 크게 선풍을 진작하고 귀국한 영조대사(靈照大師:870-947)가 창건한 이래 서기 1811년(순조 11년)에 무주선사(無住禪師)가 중창하였으며 1930년에 포산화상(苞山和尙)이 3창을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임휴사(臨休寺)라는 사명(寺名)은 후삼국시대에 백제와 고려의 각축장이 되었던 팔공산 지역에서 고려를 세운 왕건과 후백제의 견훤이 일대 격전을 치른 곳으로 동수대전(棟藪大戰)의 발생에서 찾을 수 있다.

반야당과 십육나한전
반야당과 십육나한전

서기 927년 후백제의 견훤이 신라를 침범해 오자 이 소식을 들은 왕건이 신라를 돕고자 경주로 가던 중 동수(동화사 인근지역)에서 견훤을 만나 일대 격전을 벌이게 되었다.

이 싸움에서 왕건은 크게 패하여 생명조차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을 때 왕건의 심복인 김락의 호위를 받은 신숭겸이 왕건의 투구와 갑옷으로 위장하고 달아나자 견훤이 이를 진짜 왕건으로 보고 쫓아가 죽이는 바람에 왕건은 무사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임휴사 요사채
임휴사 요사채

왕건은 그 뒤 자신을 대신하여 전사한 신숭겸과 김락을 위해 지묘사(智妙寺)를 지어 위로하였는데 이 지묘사는 후일 없어지고 말았다.

이 싸움으로 인하여 대구는 왕건에 관련된 지명이 남게 되었는데 왕건의 군사가 크게 패하였다는 파군재(破軍齋), 왕건의 탈출을 비추어 주던 새벽달이 빛났다하여 반야월(半夜月), 왕건이 혼자 앉아 쉬었다는 독좌암(獨坐巖) 등을 비롯하여 앞산의 대덕산은 은적사, 안일사와 왕건이 탈출하다가 임시로 군막을 치고 피곤한 몸을 잠시 쉬어 갔다고 하여 임휴사(臨休寺)라는 사명이 만들어 졌다.

대덕산
대덕산

왕건은 이곳에서 쉬면서 부처님 전에 기도를 드리고 전열을 가다듬어 비로소 마음의 평정을 되찾아 결과적으로 후삼국통일의 발판이 되었다.

임휴사는 창건 이후 무주선사와 포산화상의 중창 이후 1996년 혜담(慧潭)스님이 법당과 요사를 중창했다.

그러나 2004년 7월12일 새벽 인화물질로 추정되는 통을 든 괴한의 방화로 1999년 완공한 대웅전 40평과 산신각 8평, 대웅전에 봉안된 삼존불과 탱화 2점 등이 전소됐으며 반야당 일부도 소실됐다.

임휴사 중창불사 조감도
임휴사 중창불사 조감도

2018년 현장스님이 대웅전을 복원 준공했으며, 산식각과 관음전 등을 순차적으로 복원하여 현대에 이르고 있다.

달서구의 유일한 전통사찰인 임휴사는 1100여 년 전 신라 경명왕 5년(서기 921년)에 영조대사가 창건했으며 고려 태조 왕건이 팔공산 전투에서 후백제 견훤에게 패한 후 이곳에서 안심입명 해 훗날 고려를 건국했다는 전설이 서려 있는 호국 전통사찰이며, 관음기도도량으로 보정스님이 주지로 기도와 수행에 전념하고 있다.

삼성각 가는길
삼성각 가는길

거기다 지역민을 위한 ‘마야유치원’을 운영하며 어린이법회를 함께 이끌고 있다.

또 각종 문화행사를 통하여 지역주민의 많은 참여와 함께 임휴사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으며, 절 위쪽 굴속에 석샘이라는 약수터가 있으며, 위장병에 특효가 있는 약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구전에 의하면 이곳에는 석두암이라는 암자가 있었고 당시 이 샘의 천장에서는 쌀이 떨어졌는데 행자가 욕심을 부려 부지깽이로 쑤신 뒤 물로 변하였다 한다.

이 약수는 수십 년 전 위장병으로 고생하던 한 노인에 의하여 발견되어 지금도 시민들이 약수를 받으러 줄을 선다.

이렇듯 임휴사는 대구시민들이 쉬어가는 쉼터이자 역사의 현장으로서 깊어가는 가을 속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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