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관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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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불교신문
  • 승인 2018.04.20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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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관선 시작

 

먼저 앉는 자세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여러분이 내관선 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올바르게 앉아야 한다. 몇몇 도반들은 이미 알고 있겠지만 앉을 때 꽁무니뼈를 뒤로 밀어내는 방법이다. 일단 책상다리 자세로 앉은 후에 몸체를 앞으로 구부리면 둔부는 자연스럽게 뒤로 밀려나고, 그 다음 다시 허리를 펴면 몸체는 자연히 S곡선은 형성한다. 최대한 이완 상태를 유지하되 허리는 곧게 펴고 구부리지 말아야 한다.

이번 내관선 수행 코스에 두 분의 지도 법사를 청하였다. 전체 프로그램의 운영 방식에서 여러분의 수행을 도와 줄 유나(维那)는 등각(登覺) 법사님이고, 아울러 거사 두 분이 사무적인 일과 일상 생활을 도와줄 것이다.

수행 과정에서 정신이 혼침하여 집중하지 못하는 분이 있으면 지도 법사님께서 죽비로 칠 것이다. 내가 보건대 적지 않은 사람들이 비교적 혼침 상태에 빠져서 몸도 기울어 있고 고개도 숙이고 있다. 죽비로 치는 것은 사실상 여러분을 도와주는 것이다. 왼쪽 어깨나 오른쪽 어깨, 혹은 다른 곳을 죽비로 쳐서 경책을 하는 것이니 미리 알고 있기 바란다. 내관선 수행은 아주 간단하지만 지켜야 할 엄격한 룰도 있다. 휴대폰은 참선을 시작하기 전에 모두 사무장에게 보관하기 바란다. 이 소개가 끝난 뒤에 사무장에게 휴대폰을 보관하고 가족에게 이곳 전화번호를 알려주면 연락이 될 수 있다.

그리고 향후 10일간은 외부와의 연락을 완전히 끊고 서로 대화도 하지 않고 다른 방식의 교류도 하지 않는다. 오늘 저녁에는 예비단계로 기본적인 요구와 참선 방법에 대해 설명하겠다.

도반들이여, 오늘 저녁부터 우리는 사념처(四念處)의 내관(內觀) 수행을 시작한다. 먼저 삼보(三寶)의 가피와 시방에 상주(常住)하는 불보살에 감사한다. 여러분이 진정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번 수행에 참석한 것은 너무나 즐거운 일이다.

오늘 저녁에는 수행할 때 주의사항과 기본 방식, 그리고 전체 과정에 대하여 간단히 소개하겠다.

두 부류의 사람들은 이번 수행에 적합하지 않거나 수행할 필요가 없다. , 기존에 들은 법문을 잘 수행하고 있는 사람은 참가할 필요가 없다. 예컨대 금강승(金剛)의 본존법(本尊法)을 닦아서 명확히 스스로 본존(本尊)을 이루었다면 이 기초 수행에는 참석할 필요가 없다. 아울러 몸과 마음에 큰 장애가 있는 분도 적합하지 않다. 심한 심장병이나 당뇨병 환자는 장기간의 참선 수행을 견디기 어렵다. 그리고 심리적인 불안이 심각해서 마음을 가라앉히기 어려운 분도 역시 수행에 적합하지 않다.

또 하나 주의할 점이 있다. 기존에 배운 법문을 이번 내관선 수행에 섞지 말라. 예를 들면, “참선할 때 마음속에 수많은 망념이 일어나는데 염주를 갖고 아미타불을 염불해도 되는가?”,“만트라를 외워도 되는가?”등인데, 대답은안 된다이다.

다른 법문의 우열에 대해 평가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번 내관선 수행에 참석한 사람은 몸과 마음을 전적으로 투입하여 이 법문에도 평등한 기회를 주기 바란다. 이 법문은 아주 간단하지만 매우 중요한, 곧바로 마음을 가리키는 수행법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불법 공부를 오래 해서 이론적으로는 많이 알지만 번뇌와 망상이 여전히 치성한 사람에게는 아주 적합한 법문이다.

우리는 지식 불교에서 수행과 체험의 불교로 전환해야 한다.

미래의 왕생(往生)이나 해탈을 기대하는 법문에서, 지금 바로 깨우치는 해탈의 법문으로 전환해야 한다. 10일간의 내관선 수행 과정에서 여러분은 아무쪼록 수행의 법도를 따르기 바란다.

이번 수행 코스에서 전반부 사흘은 주로 마음의 집중력을 기르고, 넷째 날부터 진정한 내관(內觀)에 들어간다. 순서에 따라 하루에 한 단계씩 수업할 것이다. 실제 수행에 대한 지도는 여러 가지가 있다. 원래는 저녁 때 코엔카 선생님의 강의 DVD를 보여줄 계획이었지만, 지금은 여러분 몸과 마음의 상태에 맞추어서 수용 가능한 효율적 방법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래서 미얀마의 마하시의 수행법과 아찬차, 아찬낸의 수행법, 그리고 우빠칭 존자께서 코엔카 선생님께 전수한 수행법을 종합해서 지도하려고 한다. 이미 수행 경험이 있는 분은 이 법문을 듣는 과정에서 약간의 차이를 느낄 수 있겠지만 그 또한 정상이다.

입문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지금부터 여러분은 완전히 묵언 하기 바란다. 외부 세상과의 모든 연락도 끊고, 도반들과 어떤 형태의 교류도 하지 말아야 한다. 수행 과정에서 몸과 마음에 어떠한 변화가 나타나면 메모지에 적어서 사무장에게 주기 바란다. 매일 짧은 시간은 내어서 여러분의 질문에 직접 답변하겠다.

수행 방법은 몸의 자세를 올바로 한 후에 호흡을 지각하면서 지켜보는 것이다.

코와 입술 사이의 점에 집중한다. 숨을 들이쉴 때 코를 통하여 숨이 들어오는 것을 지각하되 숨이 거칠면 거친대로 지각하고 고요하면 고요한 대로 지각한다. 다른 것은 할 필요가 없고 다른 법문도 필요없다. 오직 우리의 마음만을 직면하는 것이다.

이 법문은 아주 탁월하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호흡을 지각하는 것이 바로 마음을 지각하는 것이다.

마음과 숨은 둘이 아니라[心氣不二] 서로 의존한다. 마음속에 분노나 미움, 번뇌가 있으면 숨이 거칠어지는 것을 체험할 수 있다. 분노, 미움, 번뇌가 일어나면 즉각 염불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하나의 망념으로 다른 망념을 대체하여 억누르는 방법이다. 하지만 분노나 번뇌를 억압하면 진정으로 마음을 바라 볼 수 없다.

우리의 마음이 안온하면 호흡도 따라서 유연해진다. 실제로 마음을 보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바로 호흡을 지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속에 어떤 염두(念頭)나 부정적인 정서가 떠올라도 억지로 억압하지 말라.

누구나 알다시피 지관(止觀)은 멈추고 관조하는 수행이다. 하지만 이 멈춤은 억압에 의하지 않은 고요함이란 것을 진정으로 알아야 한다. 가령 바다에 커다란 파도가 넘실거린다고 해서 바다의 모든 물을 포기해야 하는가? 이는 불가능하다. 그냥 평온하기만 하면 파도는 저절로 멈춘다. 마찬가지로 마음속 정서의 파동이 있을 때 호흡을 지각할 뿐 억압하지 않으면 정서에 따라 요동치지 않는다. 오히려 정서의 변화를 지각하고 있으면 평온해진다.

(), 즉 관조는 사고도 아니고 분석도 아니고 마음의 현재 상황을 주시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실상을 주시하는 것인데, 거친 실상으로부터 시작해서 점차 미세한 실상을 주시한다. 사고와 분석의 방법을 사용하면 뇌가 긴장하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피곤해진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수행하는 법문은 그냥 지각하며 주시하는 것이다. 이완 상태에서 평온하게 지각하고 주시 할 뿐이다.

내일 아침 다섯 시 반에 정식으로 내관선 수행을 시작한다. 열심히 하면 내일 이런 체험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 자신의 호흡을 지각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가! 한곳에 마음을 집중하는 것이 이처럼 어렵구나! 마음은 계속해서 도망을 간다. 과거의 일을 생각하고 있지 않으면 미래의 상황을 생각하고 있어서 지금 현재에 안주하기란 정말로 어렵다 등. 하지만 이런 경우에 부딪쳐도 낙담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다시 호흡을 지각하면 된다.

주의 : 의식적으로 호흡을 주재(主宰) 하지 말고 그저 방관자나 주시자로서 바라보기만 한다. 숨이 거칠면 거친 것을 지각하고 가늘면 가는 것을 지각한다. 사실상 호흡을 지각하는 것이 바로 마음을 지각하는 것이다.

둘째, 호흡을 지각하는 것은 어느 한 종파의 수행법이 아니다.

호흡 수행에 대해 소승(小乘)의 선법일 뿐이다”, 혹은 그저 불교의 수행법일 뿐이다라고 말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실제로 인종, 신앙, 종교와 관계없이 내면의 실상을 알고자 하면 모두 이 방법으로 수행할 수 있다.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수행법이라서 어떤 제약도 없다.

 

셋째, 호흡을 지각하면 지금 바로 세 가지 근본 번뇌를 끊는다.

숨을 쉴 때 더 많이 쉬려는 탐욕이 생기는가? 그렇지 않다. 아니면 자신의 호흡에 대해 분노의 마음이 생기는가? 역시 아니다. 호흡을 지각할 때 당신은 바로 정념(正念) 속에 있어서 어리석음도 없다. 탐욕, 성냄, 어리석음의 세 가지 근본 번뇌를 끊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 바로 호흡을 지각하는 것이다.

이 호흡부터 공부하지 않으면 마음 집중이 아주 어렵다. 예전에 많은 방법을 해보았고 관상(觀想)을 하기도 했지만 실제적인 효과는 별로 없었다. 왜 그런가? 미세하고 마음은 거칠기 때문이다.

 

넷째, 호흡을 지각하면 지금 바로 마음을 여의는 수행을 이룬다.

불자(佛子)에게 외적인 것을 벗어나기란 비교적 쉽다. 세간의 재물이나 명성 등이 외적인 것인데, 불자라면 이런 것에 너무 집착하거나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

그럼 내적인 벗어남은 무엇인가? 우리 마음은 늘 과거나 미래에 살면서 속으로는 끝없이 자신과 지껄이고 있다. 바로 이런 범부의 지견(知见)과 이원적인 대립에서 해탈해야 하는데, 그 방법이 바로 자신의 호흡을 지각하는 것이다. 호흡을 지각하면 내면의 진실한 모습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범부 중생은 습성으로 인해 항상 스스로의 환상 속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 거울을 볼 때 우리는 아름다운 면을 보여주고 싶어서 가장 매력적인 자세나 표정을 짓는다.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속에서도 스스로 만든 자아의 형상이 있어서나는 괜찮은 사람이고, 훌륭한 불자이고 가장(家長)이다라는 식으로 자아를 꾸미고 있기 때문에 마음을 성실하게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타인을 속이는 것은 교활함이고, 자신을 속이는 것은 자기 마음을 성실히 바라보지 못한 어리석은 짓이다. 그러나 호흡을 지각할 때 그 어떤 망념이 일어나도 억누리지 않고 계속 지각하고 있으면 망념은 저절로 사라진다. 다른 망념이 일어나도 마찬가지 방법으로 대응하면 모두 소멸한다. 일체가 무상법(無常法)이라서 우리는 호흡만 지각하면 된다.

여러분이 이 호흡 수련에 잘 적응한다면 사흘이나 사흘 반이 지나면 마음이 집중된다. 훈련을 통하여 몸이 건강해지는 것처럼 마음도 좋은 방법으로 훈련을 해야 한다.

 

다섯째, 호흡을 지각하는 것이 바로 붓다의 마음, 즉 불심(佛心)을 수련하는 것이고, 붓다는 곧 깨달음이니 우리는 지금 이 순간 깨달아야 한다.

앞생각(前念)을 미혹하면 범부이고 뒷생각(後念)을 깨달으면 바로 부처이다. 호흡을 지각하는 것이 바로 이 순간 몸과 마음의 실상을 깨우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망념이 일어날 때 자신을 질책하지도 말고 대체할 것도 찾지 말고 그냥 호흡을 지각하라.

10일간 외부와의 모든 연락을 완전히 끊고 폐관 수행을 하면서 자기 마음을 올바로 보라. 그리고 이 방법을 통해서 인간 뇌의 우주 비밀을 개발하라. 진정으로 개발하면 아집(我执)의 개입을 제거하여 무한한 자비와 지혜를 에너지를 방출할 것이다. 우리의 눈이 세상은 바라볼 수 있어도 자신은 볼 수 없듯이, 마음도 지식을 배우고 사물을 알 수 있지만 자신을 알지는 못한다.

가장 간단하고 단도직입적인 수행 방법은 바로 호흡의 지각으로부터 시작한다. 여러분은 10일간의 수행을 통해 탐욕, 성냄, 어리석음을 삼독(三毒)을 제거하는 훌륭한 의사가 되기 바란다. 무엇보다 수술실을 떠나지 말아야 한다. 아무쪼록 이 선원 범위 안에서 활동하고 밖으로 나가지 말아야 한다.

부처는 가장 뛰어난 의사이고, 지금 하는 수행법은 수술 칼이다. 그리고 나는 간호사와 유나(维那)로서 사무장과 함께 여러분을 도울 것이다. 여러분 스스로 마음을 직면하기 바라며, 수행을 통해 번뇌의 종양을 제거하는 의사가 되기 바란다.

또 여러분은 마음의 밭에 반야(般若)의 꽃을 키우는 정원사가 되기 바란다. 경험이 많은 정원사는 모든 쓰레기를 아름다운 꽃을 키우는 비료로 전환시킨다. 우리도 수행 방법을 알면 마음속에 수시로 나타나는 탐욕, 분노, 어리석음, 오만, 의심 등의 쓰레기들을 지혜의 꽃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선의 수행이고 선의 일이다.

또 여러분은 지혜의 만찬을 만드는 요리사가 되기 바란다. 짧은 10일간이지만 규칙을 엄격히 따르기 바란다. 마치 압력솥의 음식이 빨리 익는 것처럼 폐관 수행은 우리의 마음을 혼란에서 평정으로 재빨리 전환시켜서 본래 갖고 있던 지혜를 찬란히 꽃피게 한다. 부디 자기 자신에 대해 이런 기대를 갖기 바란다.

여러분의 대덕(大德)이 수기(授记)하기를 육조사에서 1만 명의 성취자가 있을 거라고 했다. 우리도 그 일원이 되기를 바란다! 이 호흡을 주시하고 지각하는 수행이 제대로 이루어지면 첫날에서 둘째 날, 셋째 날까지는 힘들 수도 있다. 자신의 호흡을 주시하는 일이 아주 간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행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진정한 훈련을 받은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제대로 하기가 아주 어렵다. 호흡을 할 때 당신은 마음이 하나의 생각[]에서 다른 생각으로 계속 이어지면서 끊어지지 않는 것에 실망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하루 중에 아주 짧은 10분이나 20분이라도 정말로 호흡을 지각하고 마음이 달아나지 않았다면 아주 훌륭한 것이다! 물론 더 잘하면 더욱 좋다.

왜 그런가? 무시(無始) 이래로 마음은 항상 이원적인 대립으로 혼탁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불법을 많이 듣고 공부했지만 지식으로 얻은 것일 뿐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 호흡을 지각하면 곧바로 세 가지 근본 번뇌를 끊을 수 있다! 이 짧은 순간의 맑은 마음은 커다란 힘을 갖고 있기 때문에 무량겁(無量劫) 이래의 혼탁한 마음의 바다에서 폭발을 유발할 수 있다. 이로 인해 몸과 마음이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흔하지만 이는 정상적인 일이다.

내관선이 너무 무미건조해서 도망가고 싶거나 너무 어렵게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계속 호흡을 지각하면서 10일간의 수행을 마치기 바란다! 의사가 이미 수술대 위에서 환자의 배를 갈랐는데, “의사 선생님, 수술하지 않고 그냥 돌아가겠습니다라고 하면 되겠는가? 당연히 안 된다. 그런 짓은 이익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해롭기까지 하다.

마찬가지로 재미없고 힘든 데다 망념이 예전보다 치성해서 수행을 하고 싶지 않다면 부디 그 상황을 직시하기 바란다. 그것이 바로 우리 마음의 진실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자신의 자아를 아름답게 꾸몄지만 이제 진실한 모습을 본 것이다! 괜찮다. 이 사실도 지각해서 그 모든게 무상이라 지나가는 것임을 알아차려야 한다. 이렇게 쭉 가다 보면 마음이 평온하고 맑아지는 것을 스스로 발견한다.

사흘간의 호흡을 지각하는 수행을 통해 맑은 마음이 되어보라. 그때 우리 마음은 마치 푸른 하늘과 같고 맑은 호수와 같아서 주변의 일체 사물을 여실하고 완벽하게 비춘다. 이렇게 되면 비로소 내관선을 할 수 있는 조건과 능력을 갖춘 것이라서 모든 존재의 진실한 모습, 즉 제법실상(諸法實相)을 깨달을 수 있다. 따라서 이건 매우 중요한 수행 방법이다! 앉은 자세로 참선을 하는 것 외에 경행(經行)을 할 수도 있는데, 주의할 점은 경행은 느린 동작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이미 명확히 지적했듯이, 내관선 수행의 기본 원칙은 이완 상태에서도 주의력을 유지한 채 한결같이 마음을 집중해 정진하면서도 전혀 긴장하지 않는 것이다. 정념(正念), 각조(覺照), 이완, 완만함, 호흡의 지각이 바로 이 수행법의 비결이다.

좌선을 풀고 경행하는 방법은 바로 걷는 동작 하나하나를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평상시의 걸음은 너무 빨라서 실상을 지각할 수 없고 번뇌를 전환할 수 없다. , 빨리 걸으면서 머릿속으로는 어제의 일을 생각하거나 앞으로 볼 시험을 생각한다……. 말하자면 몸은 현재에 있지만 마음은 언제나 과거나 미래에 매여 있어서 지금 당장의 현재를 놓치고 있다.

도반들 사이에도 합장을 하거나 인사를 할 필요가 없다. 마치 혼자서 수행하는 것처럼 해야 한다. 이번 참선 수행을 통해 진정으로 탐욕, 성냄, 어리석음의 속박에서 해탈하고 진정한 평화, 조화, 즐거움을 향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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