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진루 옆의 실개천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가 정겹다.
망운산에 가면 잔잔한 흐름의 승언스님의 차맛을 만날 수 있다.
푹푹 찌는 폭염이 연일 계속될라치면, 온통 세상이 가마솥에 잠겨있는 듯하다.
땀으로 적셔진 옷을 짜보면 주루룩 물이 흘러내릴 듯하다.
이럴 때 산사에서 차 한 잔에 몸을 추스르며 차가 주는 향기와 맛을 음미해 본다.
생명의 근원이랄 수 있는 물, 그 물의 오묘한 작용이 빚어다 주는 공능 중에서도 차는 절묘한 중용의 묘를 잘 나타낸 영물이라 할 수 있겠다.
물과 불의 절묘한 조화로 이루어진 차란 인간세계에서 보기 드문 도의 성품을 가지고 있는듯하다.
채진루 옆의 실개천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가 정겹다.
물은 낮은 데로 흐르면서도 어찌 그리 처연한가.
물은 남과 다투지 않고, 낮고 더러운 곳도 마다않고 흘러가는 데로 맡겨 버린다.
낮고 더러운 곳은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이라 다툴 이유가 없다.
물은 모든 생명에 도움을 준다. 주어도 준다는 상이 없으며, 욕심과 지혜를 억제한 도움이 아닌 자연스러운 무위 무심의 도움을 준다.
물은 또한 부드럽다. 태풍처럼 강한 바람에 큰 고목들조차 부러지고 꺾이는데 비해 약한 풀들은 그 부드러움으로 인하여 강함에 맛서 생존할 수 있다.
이러한 부드러운 성품을 물은 가지고 있다. 부드러움으로 인하여 자기를 고집하지 않아 아무 그릇에도 담기어 쓰일 수 있다.
남해 화방사에 가면 크지만 작아 보이는, 낮은 목소리, 물의 성품을 오롯이 담고 차를 내어주는 스님이 있어 좋다.
그 차 맛 속에서 군자의 품격을 느낀다. 부드럽고 담백한 것은 세간에서 으뜸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세간적인 맛뿐만 아니라, 출세간의 깊이도 있으니, 진정한 차맛은 이런 것인가?
누가 뭐래도 차맛은 혀뿌리에 느껴지는 관능적인 맛보다는 진리의 참맛인 법희선열에 있다고 하겠다.
세간의 차맛이 군자의 멋이라고 하지만, 불가의 생사해탈의 대자유인이 마시는 법미에 비교하겠는가?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승언스님(남해 화방사 주지)에게서 조주스님이 걸어 나오고, 천년기념물인 망운산 산닥나무가 박수를 친다.
망운산이 구름을 내려다보고, 여초 선생이 일필휘지로 일주문에서 적멸을 겨누니 예가 꿈속에서 본 진리를 캐는 사람들의 땅이렷다.
남해에서 가장 높은 산임에도 몸을 낮추고 깨끗한 풍모, 드넓은 기상, 아는 자만 아는 늠름한 기상의 망운산에 가면 잔잔한 흐름의 승언스님의 차맛을 만날 수 있다.
찌는 듯 한 여름도 비켜가는 듯! 세상 속에서 약간 비켜선 듯!
그 진가가 꼭꼭 숨겨진 여름 산사에서 무더위를 쉬어가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