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관스님의 확연무성[廓然無聲]
종관스님의 확연무성[廓然無聲]
  • 통불교신문
  • 승인 2018.06.14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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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 액난에 대하여 우리는 어떻게 해석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모여지면 있는 것 같지만 흩어지면 공하다

고통과 액난을 어떻게 벗어나야 잘 벗어 날 수 있습니까?

종관스님의 확연무성[廓然無聲]
종관스님의 확연무성[廓然無聲]

고통과 액난을 소멸하려면 먼저 그 고통과 액난의 근본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보여질 물건과 보는 자에게 집착이 있으면 보고 보여 지는 것을 제대로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원효대사는 5안을 구족하여 자유로이 관찰하되 본다고 하는 ‘마음’ 과 보여 지는 ‘물건’에 대하여 마음이 비워져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

그러면 “능관심”은 무엇이고, “소관경”은 무엇일까?

이것을 반야심경에서는 “오온”으로 보고 있습니다. 5온은 .색.수.상.행.식.입니다.

색. 은 물질을 말하는 것이고 수.상.행.식. 은 정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물질은 .지.수.화.풍. 4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거칠게 형성된 것을 산하대지라 하고, 정미롭고 세밀한 것들이 모여진 것은 우리의 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칠은 것을 .외색.이라하고, 정미로운 것을 .내색.이라 하지만, 외색과 내색은 둘이 아닙니다.

사람이 산다고 하는 것은 곧 외색을 흡수하여 내색을 만들고, 사람이 죽는다고 하는 것은 내색이 곧 외색화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살았을 때는 뼈대이지만 죽고 나면 땅으로 돌아가며, 살아서는 공기이지만 죽고 나면 바람으로 돌아가고, 살아서는 맥박이지만 죽어서는 불.화.로 돌아갑니다.

모였다, 흩어졌다, 이것이 우주인생의 성주괴공이며 생주이멸. 되는 것입니다.

정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는 감수하는 작용이 되고, “상”은 상상하는 작용이며 “행” 은 의지하는 작용이 되고 “식” 은 분별하는 작용이 되는 것입니다.

“눈”이라는 것은 현상을 보고 “귀”는 소리를 듣고 “코”는 냄새를 맡고, “혀”가 맛을 보고 “몸”은 촉감하고 “뜻”으로는 생각을 받아들여 괴롭다, 또는 즐겁다. 괴로운 것도 즐거운 것도 아니라고 하는 고/락/사 3수를 형성하는 것! 이것이 감수하는 작용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6상 6행 6식의 행이 연이어 일어나는 것이 마치 4대 동화작용에 의하여 번쩍 번쩍 일어나는 것이 마치 전기불과 같습니다.

감수하는 작용이 일어나면 상상하는 작용이 일어나고, 상상하는 작용이 일어나면 분별하는 작용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도 고립독존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모여지면 있는 것 같지만 흩어지면 공하다. 그래서 오온 다 공하다고 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통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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