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 정동마을 용화사에 포대화상이 나투셨다.
함안 정동마을 용화사에 포대화상이 나투셨다.
  • 통불교신문
  • 승인 2020.05.14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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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없이 웃는 모습, 기뻐서 웃는 모습,
그러나 용화사 포대화상은 그냥 웃고 계신다.
보는 이마다 웃음의 의미는 달라도
웃고 있다는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다.

함안 정동마을에 있는 용화사에 아담한 석탑과 포대화상이 나투셨다. 용화사(주지 동진 스님)에서는 대웅전 앞에 있는 자연석 위에 아담한 석탑을 올려놓았다.

석탑은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불교 문화재 중에서도 가장 흔한 것이다. 원래는 무덤을 가리키는 말로 산스크리트어 스투파(stupa)’에서 유래하였다. 스투파가 한자어 탑파(塔婆)로 바뀌었으며 여기에서 탑이라는 말이 나왔다.

석가모니가 열반하기 전에 유언으로 네거리에 탑을 세우고 나의 사리를 그 속에 봉안하라라고 하여서 인근 여덟 나라가 처음으로 탑을 세웠으니 이를 근본팔탑(根本八塔)이라고 한다. 이들 여덟 나라 이외에도 재를 거두어 탑을 세우니 이를 회탑(灰塔)이라 하였고, 사리를 분배하였던 병도 탑을 세우고 봉안하여 병탑(甁塔)이라고 하였다.

[함안 정동마을 용화사에 세워진 석탑@통불교신문]
[함안 정동마을 용화사에 세워진 석탑@통불교신문]

탑에 대한 신앙이 점점 깊어지자 부처가 입던 옷이나 발우 등의 유품을 넣은 탑도 조성하게 되었으며, 아쇼카 왕에 이르러서는 기존 근본팔탑에 봉안된 사리를 분배하여 84천 기나 되는 탑을 세우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화강암으로 만든 석탑이 발달하였다. 용화사 석탑은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래도 소나무와 앞에 펼쳐진 저수지와 어울려 한 폭의 그림 같은 모습으로 친근하게 다가온다.

자연수행 도량 용화사에 가면 누군가 수행의 척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석탑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지켜주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 포대화상이 웃고 계신다. 실없이 웃는 모습, 기뻐서 웃는 모습, 그러나 용화사 포대화상은 그냥 웃고 계신다. 보는 이마다 웃음의 의미는 달라도 웃고 있다는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다.

[함안 정동마을 용화사 포대화상@통불교신문]
[함안 정동마을 용화사 포대화상@통불교신문]

포대화상을 보면서 나도 실없이 한 번 웃어 본다.

포대화상은 중국의 승려이며 본명은 계차(契此). 몸집이 뚱뚱하며, 이마는 찡그리고, 배는 늘어져 이상한 모양을 하였으며, 말이 일정치 않고, 아무 데서나 눕고 자고 하였다 한다.

언제나 지팡이에 자루를 걸어 메고, 소용되는 물건은 모두 그 속에 넣어 가지고 거리로 다니면서 무엇이든 보기만 하면 달라고 하여, 먹을 것은 무엇이나 주기만 하면 받아먹으면서 조금씩 나누어 그 자루에 넣곤 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별호를 지어 장정자(長汀子) 또는 포대화상(布袋和尙)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의 길흉화복이나, 날씨 등을 미리 말하는데 맞지 않는 일이 없었다 한다. 일발천가반 고신만리유 청목도인소 문로백운두(一鉢千家飯 孤身萬里遊 靑目覩人少 問路白雲頭)라고 읊은 그의 게송을 보더라도 그 평생을 짐작할 수 있다. 9163월에 명주(明州) 악림사 동쪽 행랑 밑 반석에 단정히 앉아서 미륵진미륵 분신백천억 시시시시인 시인자불식(彌勒眞彌勒 分身百千億 時時示時人 時人自不識)이라는 게송을 남기고 사망. 그때 사람들은 포대화상을 미륵보살의 화현이라 하여, 그 모양을 그려서 존경하여 받드는 사람이 많았다 한다.

그야말로 대자유인이셨다. 자연수행 도량 함안 정동마을 용화사에서 자연 속에 묻혀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법회문의]

경남 함안군 함안면 북촌리 산21-2

용화사 종무소 010-5052-8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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