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관선-3 / 무엇이 내관참선인가?
내관선-3 / 무엇이 내관참선인가?
  • 통불교신문
  • 승인 2018.05.03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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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관이란 무상(無常)을 능히 관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생로병사의 무상함이 있는데,
이는 세 살 먹은 어린이도 알고 있다.

첫째 날 저녁

 

첫째 날이 지나갔다. 보통 첫날이 많이 힘들다. 오개(五蓋)가 맹렬히 솟아난다. 많은 도반들이 지식 차원에서 불법을 공부하긴 했지만 자기 마음속의 수많은 망념을 제대로 바라보지는 못하고 있다.

불법을 구할 때는 진솔한 믿음과 기도만으로 부족하고 수행의 정진이 있어야 한다. 현재의 호흡 수행은 마치 강을 거슬러 가는 배처럼 호흡을 지각할 수 있어서 잠깐의 고요함이라도 커다란 힘을 갖고 있다.

오늘 저녁에는 내관참선의 열다섯 가지 중요한 원칙을 설명하려고 한다.

 

첫째, 무엇이 내관참선인가?

티베트의 고엔카 스승은 내관선을 심령을 정화하는 방법이자 생활의 예술이라고 하였다. 마하시 선사나 아찬차, 아찬낸 스님의 내관선에 대한 가르침을 본 도반도 있을 것이다. 표현 방식이 다를 뿐 본질은 같다.

내관이란 지금 당장 우리의 몸과 마음으로부터 수행을 일으켜서 몸과 마음의 상태를 여실히 바라보는 것이다. 내관의 관건은 명칭[]과 색()에 대한 관찰이다.

우리는 이미 사념처(四念處) 수행이마음의 청정치 못함을 관하는관심부정(觀心不淨), ‘감각의 느낌이 고통임을 관하는관수시고(觀受是苦), ‘마음이 무상함을 관하는관심무상(觀心無常), ‘법이 무아 임을 관하는관법무아(觀法無我)라는 것을 지식으로는 알고 있다. 아울러 12연기도 알고 있다. 12연기는 무명은 행()을 반연(攀緣)하고, 행은 식()을 반연하고, 식은 명색(名色)을 반연하고, 명색은 육입(六入)을 반연하고, 육임은 촉(:접촉)을 반연하고, 촉은 수()를 반연하고, 수는 애()를 반연하고, 애는 취()를 반연하고, 취는 유()를 반연하고, 유는 생(:태어남)을 반연하고, 생은 노사우비고뇌(老死憂悲苦惱:늙고 죽음, 걱정과 슬픔, 고통과 괴로움)을 반연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명칭을 잘 외우고 있어도 구체적인 수행 방법을 모르면 앵무새가 말을 따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왜 그렇게 많은 불법을 배웠는데도 소용이 없는가? 생멸의 마음과 오염된 마음을 분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내관이란 무상(無常)을 능히 관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생로병사의 무상함이 있는데, 이는 세 살 먹은 어린이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 말은 생멸의 마음과 오염된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지금 당장 명칭과 색에 대한 관찰을 통해 생멸의 마음을 여실히 바라보면 오염된 마음은 사라진다. 실제로 평상시에 우리들은 언제나 오염된 마음으로 일을 한다! 모든 동작, 언어, 염두(念頭)에서 언제나주재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오염되어 있다. 이러한 미세한 오염을 없애지 않고는 어떤 법을 수행하여도 성과를 이룰 수 없다. 이 미세한 오염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불법을 아무리 많이 배워도 제대로 성취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이 오염을 지우고 여실히 생멸을 깨우칠 수 있는가?

바로 명칭과 색()에 대한 관찰을 통하여 얻는다. 색법(色法)은 신문(身門)의 색법과 심문(心門)의 색법으로 나뉘며, 명법(名法:명칭의법)도 마찬가지다. 신문의 색법은 오온(五蘊), 십이처(十二處), 십팔계(十八界), 이십이근(二十二根) 등이다. 색온(色蘊)은 색법(色法)이고 수(), (), (), ()은 명법(名法)이다. 걷는 모습[], 서 있는 모습, 누운 모습 등은 모두 심문의 색법이다.

이 원칙은 근본 핵심은 바로를 버리는 것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명칭과 색의 작용일 뿐의 주재는 없다.‘를 영원히 불변이라고 여기지만, ‘는 영원불변이 아니라 오온(五蘊)의 일시적인 결합체일 뿐이다. 오온을 더 깊이 탐구하면 인연의 화합임을 알 수 있고, 인연의 화합이라면 그 실체는 바로 비어 있는 공()이다. 그럼 무엇이 작용하는가? 업력이다. 이렇게 한 단계 한 단계 내관하면서 앞으로 사흘 반나절은 호흡을 지각하기만 하라. 한 점에 집중하고 범위를 더 넓히지 말라.

 

[통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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