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림당 혜인스님의 전도몽상] - 3 마음아 -
[성림당 혜인스님의 전도몽상] - 3 마음아 -
  • 성림당 혜인스님
  • 승인 2019.08.19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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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시절인연에 애쓰며 살아가는 그대들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가?

心如工畵師 能畵諸世間 심여공화사 능화제세간

五蘊悉從生 無法而不造 오온실종생 무법이불조

어느 날 어느 순간

심여공화사(心如工畵師)란 한 구절에 눈이 번쩍 띄었다.

마음이 화가와 같다. 이 얼마나 칼 같은 한 마디 이던가.

누구나 자기만의 색깔로 자기만의 그림을 그리며 살아간다.

누군가는 정물화를 그리고, 누군가는 산수화를 그리며, 누군가는 풍경화를 그린다.

어떤 그림은 낙서나 분칠로 완성되지 못하는 그림도 있다.

 

마음이란 것이 무엇인가?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것이 바로 이 마음이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움직이기도 하고, 동하기도 하며 형체가 없음에도 상처를 받는다.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 사랑이고, 정이며 마음이 동하는 것이 욕심이다.

 

나는 스님이지만 때로는 나도 내 마음 같지 않은 날이 있다.

나는 열심히 법문하는데 법문에 집중하지 않고, 딴 짓하는 사람들을 보면 스님체면에 대 놓고 나무랄 수는 없고, 얼굴은 웃으면서 법문하지만 속으로는 "아이고~ 이 동네 귀신들은 다 머 하노. 저것들 안 잡아가고~"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곧 돌아서서 참회 하기는 하지만.

그럼 중생의 마음과 부처의 마음이 어떻게 다른가?

중생의 마음은 매일 죽겠네. 죽겠네 하는 것이다.

아침에 눈 떠 일어날 때부터 "아이고~ 죽겠네. 죽겠네. 다리 아파 죽겠네. 허리 아파 죽겠네. 여름에는 더워 죽겠네. 겨울에는 추워 죽겠네. 실컷 내가 내 손으로 밥 먹고, 배불러 죽겠네. 배불러 죽겠네" 모든 일에 죽겠네~ 죽겠네를 달고 사는 것이다.

그러나 부처의 마음은 "감사 합니다"하는 것이다.

뭐가 그래 감사 하노?

아침에 눈 떠 일어나 떠오르는 태양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하고, 지는 달과 별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하고,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움직일 수 있음에 감사하고, 모든 일에 감사 해 하는 마음이 곧 부처의 마음인 것이다.

 

그런데

이 마음을 잘 못써서 탈이 난다.

이 마음을 잘 못써서 병이 난다.

예전에는 사고나 병으로 죽는 일이 다반사였는데, 요즘은 마음에 병이 나서 죽는다.

모든 걸 허무하게 만드는 병. 모든 걸 부질없게 만드는 병. 불연(佛緣)의 인연을 끊게 만드는 병. 그 병이 바로 우울증. 조울증. 공황장애 등등이다.

이 병이 나를 자살이라는 이름으로 이끈다.

 

그럼 어떻게 이 마음을 잘 써야할까?

제일 먼저 내가 나를 사랑 할 줄 알아야한다.

내가 나를 아끼지 않는데 누가 나를 아껴줄 것인가.

집에 키우는 강아지도 주인이 애지중지하면 손님이 막 대하지 못 하듯 내가 먼저 나를 사랑해야한다.

그 다음은 만족할 줄 아는 것이다.

내가 처한 현실. 내가 처한 상황. 이 모두로부터 인정하는 마음. 필요 이상 더 가지지 않는 것. 그것이 만족이고 무소유이다.

 

힘든 시절인연에 애쓰며 살아가는 그대들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가?

한 번쯤은 멈춰 서서 내가 그리고 있는 그림을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포대화상 @ 통불교신문]
[포대화상 @ 통불교신문]

-유심게-

 

爾時(이시) 이때에

覺林菩薩(각림보살) 각림(覺林)보살이

承佛威力(승불위력)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遍觀十方(편관시방)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而說頌言(이설송언) 게송으로 말하였다.

 

譬如工畵師(비여공화사) 마치 그림 잘 그리는 화가가

分布諸彩色(분포제채색) 여러 가지 채색을 써서

虛妄取異相(허망취이상) 한상처럼 그림을 그리지만

大種無差別(대종무차별) 그 성품은 차별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大種中無色(대종중무색) 본 성품 가운데 빛깔이 없고

色中無大種(색중무대종) 빛깔 가운데 본 성품이 없지만

亦不離大種(역불리대종) 그러나 본 성품을 떠나서는

而有色可得(이유색가득) 빛깔을 찾을 수도 없습니다.

 

心中無彩畵(심중무채화) 마음속에 그림이 없고

彩畵中無心(채화중무심) 그림 속에 마음이 없지만

然不離於心(연불리어심) 그러나 마음을 떠나서는

有彩畵可得(유채화가득) 그림을 찾을 수도 없습니다.

 

彼心恒不住(피심항불주) 마음은 항상 머물지 않고

無量難思議(무량난사의) 한량없고 헤아릴 수도 없으며

示現一切色(시현일체색) 온갖 것을 그리지만 마음과 사물은

各各不相知(각각불상지) 서로 알지 못합니다.

 

譬如工畵師(비여공화사) 그림 그리는 화가가

不能知自心(불능지자심) 자기의 마음은 알지 못하지만

而由心故畵(이유심고화)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이

諸法性如是(제법성여시) 모든 법의 성품도 그러합니다.

 

心如工畵師(심여공화사) 마음이 화가와 같아서

能畵諸世間(능화제세간) 모든 세간을 그려내나니

五蘊悉從生(오온실종생) 오온이 마음 따라 생기어서

無法而不造(무법이불조) 무슨 법이나 짓지 못하는 일이 없으며,

 

如心佛亦爾(여심불역이) 마음과 같이 부처도 그러하고

如佛衆生然(여불중생연) 부처와 같이 중생도 또한 그러합니다.

應知佛與心(응지불여심) 마음과 부처와 중생과는 서로 차별이 없으며

體性皆無盡(체성개무진) 서로 다하는 일이 없습니다.

 

若人知心行(약인지심행) 普造諸世間(보조제세간)

마음이 모든 세간을 짓는 줄을 아는 이가 있다면

是人則見佛(시인즉견불) 了佛眞實性(료불진실성)

이 마음은 부처를 보아 부처의 참 성품을 알게 되며,

 

心不住於身(심불주어신) 마음이 몸에 있지 않고

身亦不住心(신역불주심) 몸도 마음에 있지 않지만

而能作佛事(이능작불사) 모든 불사(佛事)를 능히 지어

自在未曾有(자재미증유) 자재함이 미증유(未曾有)합니다.

 

若人欲了知(약인욕요지) 만일 어떤 사람이

三世一切佛(삼세일체불) 삼세(과거·현재·미래)의 일체 부처님을 알려면

應觀法界性(응관법계성) 마땅히 법계의 성품, 이 모든 것이

一切唯心造(일체유심조) 마음으로 됐음을 알아야 합니다.

[의령 수암사 @ 통불교신문]
[의령 수암사 @ 통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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