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한은 언제나 계속되나니
원한을 놓아야 풀리리라.
이것이 영원한 진리이다. -법구경-
요즘 돌아가는 세상이 심상치 않다.
오랜 숙업(宿業)을 가진 일본과의 관계가 그러하다.
우리나라 대법원이 과거 일제강점기 당시 강제징용당한 한국인 피해자들에게 배상을 해야 한다는 판결이나 오면서 이에 대한 일본의 경제보복조치로 세상이 시끄럽다.
그런데 이 일을 군더더기 없이 간단하게 보면, 그냥 서로의 입장(立場)차이 일뿐이다.
맞은 사람입장에서는 때렸으니 사과해라는 거고, 때린 사람입장에서는 사과 할 만큼 했다는 거다.
맞은 사람입장에서는 아직도 아프다는 거고, 때린 사람입장에서는 이제 좀 그만해라 하는 거다.
맞은 사람입장에서는 감정이 개입되고, 때린 사람입장에서는 또 맞을래하는 것이다.
입장 차이로만 보면 양쪽 다 옳은 말이다.
그런데 입장 차이에도 관점(觀點)과 명분(名分) 이란 게 있다. 바로 이해와 납득이다.
관점이 있기에 이해가 되고, 명분이 있기에 납득이 되어야 한다.
"내 입장에 선 화가 나는데, 네 입장이 되어 보면, 이해도 된다"가 성립되어야 한다.
일제강점기35년. 여자는 정신대로 남자는 징용으로, 역사는 왜곡되고 문화는 훼손되고, 이 땅에 아물 수 없는 아픔과 흔적을 남긴 일본에게 어떤 입장이 있는 것인가?
내가 보기에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이다. 잘 못 한 사람이 아무잘못 없는 사람을 도리어 나무라는 것이다.
불가(佛家)에 업(業)이란 것이 있다.
내가 지은 행위에 따라 나오는 결과의 원인을 업(業)이라 하고 그 과보를 업보(業報)라 한다.
이 업에는 동업(同業)과 별업(別業)이 있는데 동업은 무리가 짓는 업이고 별업은 개인이 짓는 업이다. 업이 쌓이고 쌓이면 장(障)이 되는데 이미 대동아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아세아인들에게 아물지 않은 아픔과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일본은 이 동업(同業)을 어떻게 닦을 것인가?
기회가 있을 때 참회(懺悔)해야 할 것이다.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스스로 고개 숙여 사죄하는 것만이 어두운 과거로부터 밝은 미래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며 진정한 과거청산만이 일본을 다시금 빛내는 길일 것이다.
-법구경-
지은 죄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금세 짜낸 젖이 상하지 않듯.
재에 덮인 불씨가 꺼지지 않듯.
지은 업이 당장엔 보이지 않는다 해도
그늘에 숨어서 그를 따라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