끽다법어(喫茶法語)
끽다법어(喫茶法語)
  • 이철순
  • 승인 2019.07.11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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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喫茶遊’를 中心으로 -

차샘 최정수(茶文化硏究家‧ 한국홍익茶道대학원장)

끽다법어(喫茶法語)는 일찍이 당나라 선차(禪茶)의 비조(鼻祖)인 조주선사(趙州禪師, 778〜897)가 주창한 ‘끽다거(喫茶去)’가 유명하다. ‘끽다거’의 맥을 있는 한국 근‧현대의 다성(茶星)으로 추앙받는 故 금당 최규용(錦堂 崔圭用, 1903〜2002) 선생이 주장하여 공포한 ‘끽다래(喫茶來)’가 있다. 나는 차계 1세대 현역으로 활동하며 ‘끽다래’를 계승한 끽다법어로 1988년 ‘끽다유(喫茶遊)’ 정신을 제창했다. 끽다유는 ‘차와 놀다’는 의미로 특히 끽다유에서 쓰는 ‘유(遊)’의 출처는 원효성사의 ‘유심안락도(遊心安樂道)’와 화랑의 교육덕목인 ‘산천유오(山川遊娛)’ 그리고 조선조 후기 차의 중흥조인 추사 김정희 대다사(大茶士)의 편액 ‘유천희해(遊天戱海)’ 등에서 참고하였다. 

끽다법어에는 단자함의(單字含意) ‧ 단자수신(單字修身) 혹은 일자법어(一字法語)라 할 수 있는 ‘거(去) ‧ 래(來) ‧ 유(遊)’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중에서 끽다(喫茶)를 제외한 ‘거(去)와 래(來)’를 비교적 간단하게 직역(直譯)하면 ‘가고 온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유(遊)’는 거(去)나 래(來)와는 완전히 다르다. 즉, 오고 가는 것, 즉 태어나고 죽는 일은 자신의 의지(意志)와는 상관이 없다. 그것만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반면에 ‘유(遊)’는 자기의 의지와 노력으로서 충분히 가능하다. 그래서 자기의 결심(決心)에 따라 얼마든지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다. 즉, 가고 오는 일은 선택할 수 없지만 의미 있고 보람 있게 사는 것은 본인의 올바르게 집중하는 사고(思考)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처럼 ‘유(游)’는 새로운 차문화 생활을 무척 기대하도록 만든다. 소박한 마음씨로 혹은 안정된 다심(茶心)으로 세속(世俗)에 조금도 얽매이지 않고 언제나 민족의 차 유산(遺産)인 차문화를 즐기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음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유(遊)의 진정한 의미는 어떻게 머무느냐, 어떻게 사느냐가 매우 중요한 이슈가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차인(茶人)은 일상과 일생을 다도(茶道)와 다선(茶禪)으로 살아야 차문화가 삶에 좋은 힐링과 테라피가 될 수 있다. 다도워라밸 역시 차문화를 통해 일과 삶의 균형을 얻을 수 있다. 차(茶)에도 도(道)가 있어야 수신다도(修身茶道), 즉 깨달음의 다도(茶道)가 된다. 또 차에 선(禪)이 있어야 차선(茶禪)이나 차선일여(茶禪一如) ‧ 차선일미(茶禪一味) ‧ 선차지법(禪茶之法) 혹은 차명선(茶瞑禪)이 된다. 

끽다법어에 담겨 있는 지혜(智慧)의 집약인 ‘래(來) ‧ 유(遊) ‧ 거(去)’에 대한 실천(實踐)은 반드시 오랜 차공부와 인고(忍苦)의 세월을 겪어내는 차수행(茶修行)이 있어야 비로소 성취될 수 있는 덕목이다. 그래야 내면의 성찰을 통해 비로소 내공(內攻)이 쌓이게 된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차생활로 보다 나은 차인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차를 통한 차수행이나 차정신 등이 곁들여진다면 더없이 행복한 차생활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차인들은 마음을 바로 세우는 정심(正心), 즉 차인정심(茶人正心) ‧ 다도정심(茶道正心)의 차정신(茶精神)으로 차문화에 진정한 뜻을 담아 생동감 있는 열정(熱情)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하겠다. 
                                                 
                                                      弘益齋에서 弘益茶를 吟味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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