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옹선사(懶翁禪師) 추모(追慕) 열반불사일(涅槃佛事日) 향(香) 올리며
나옹선사(懶翁禪師) 추모(追慕) 열반불사일(涅槃佛事日) 향(香) 올리며
  • 이철순
  • 승인 2019.06.17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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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사 주지 현담 스님
서남사 주지 현담 스님


날 때는 한 가닥 맑은 바람이 일고 죽어 가매 맑은 못에 달그림자 잠겼다
나고 죽고 가고 옴에 걸림이 없어 중생에게 보인 참마음 있다
참마음이 있으니 묻어버리지 말아라 이때를 놓쳐버리면 또 어디 가서 찾으리

生時一陳淸風起 滅去澄潭月影沉 
生滅去來無罣礙 示衆生體有
眞心 有眞心休埋沒 此時蹉過更何尋

나옹선사의 스승이신 서천 지공화상께서 돌아가신 날에 남기신 게송이다. 

또 선사께서는 말씀하셨다.

왔어도 온 것이 없으니 밝은 달그림자가 강물마다 나타난 것 같고, 
갔어도 간 곳 없으니 맑은 허공의 형상이 모든 세계에 나누어진 것 같다. 
말해 보라 지공은 도대체 어디 있는가.

師云 來無所來 如朗月之影現千江
去無所去 似澄空之形分諸刹 且道
指空畢竟在什麽處

 영덕의 덕 높은 고려 말 불교계 스승이신 나옹선사께서 1376년 음력 5월 보름 진시(辰時)에 열반에 드셨다. 올해로 추모 열반 643주년을 맞이한다.
 나옹선사의 행장에 보면 선사께서는 병진년(1376) 봄에 양주 회암사 불사를 회향하고 4월 보름에 크게 낙성식을 베풀었다. 우왕은 구관 유지린을 보내 행향사(行香使)로 삼아 축하하였으며, 서울에서 지방에서 회암사의 낙성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구름처럼 모여 들었다고 한다.
사헌부(司憲府)와 사간원(司諫院)의 대론(臺論)에 의하면 “회암사는 서울과 아주 가까우므로 사부대중의 왕래가 밤낮으로 끊이지 않으니 혹 생업에 폐해를 주지나 않을까.”고 하였다.
 그러한 유생들의 상소를 받아들여 임금께서 할 수 없이 어명으로 선사를 밀양 영원사(瑩源寺)로 거처를 옮기도록 명하게 되어, 가는 도중 병을 얻어 여흥(驪興)인 지금의 여주 신륵사에서 음력 5월 15일 진시(辰時)에 열반(涅槃)에 들게 된다.
 선사께서 가시는 장소와 날짜를 시자와 제자들에게 이르시고 가시기 전에 한 스님이 여쭙길 “지수화풍 사대가 각기 흩어지면 어디로 갑니까?”라고 묻자 선사께서는 주먹을 맞대어 가슴에 대고 “오직 이 속에 있다.”라고 하였다.
 선사께서 열반에 드실 때 그 고을 사람들은 멀리 오색구름이 산꼭대기를 덮는 것을 보았고, 또 선사께서 타시던 흰 말은 3일 전부터 풀을 먹지 않은 채 머리를 떨구고 슬피 울었다고 한다. 선사의 육신을 화장하여 나온 수행의 결정체인 사리는 부지기수였으며, 문도들이 영골사리를 회암사에 모시고 정골사리는 신륵사에 안치하고 석종으로 덮었다고 한다.
 선사의 당시 열반불사는 수많은 대중들이 환희심과 발심을 하는 계기가 되었고 또한 목은 이색은 탑명(塔銘)에 삼가 절하고 머리를 조아려 비명(碑銘)을 아래와 같이 적었다.

진실로 선을 깨친[禪覺]이시여 
기린의 뿔이로다
임금의 스승이요
인천의 눈이로다

뭇 승려들 우러러 보기를
물이 골짜기로 달리는 듯하나
선 바가 우뚝하여
아는 이가 드물다

신령한 새매 꿈이
처음 태어날 때 있었고
용신(龍神)이 초상을 호위함이여
마지막 죽음을 빛냈도다

하물며 사리라는 것이 
스님의 신령함을 나타냈나니
강은 넓게 트였는데
달은 밝고 밝았도다

공(空)인가 색(色)인가
위아래가 훤히 트였나니
아득하여라, 높은 모습이여
깊이 멸하지 않으리라.

위와 같이 덕 높은 선사께서 육신은 가셨지만 법신의 향화(香花)는 우리들에게 현재에도 화현(化現)하고 계신다. 출가의 서원(誓願)과 같이 삼계를 벗어나 중생을 이익 되게 하기 위한[超出三界 利益衆生] 광도중생(廣度衆生)의 보살행을 본받기를 열반불사일에 진영(眞影)에 향 올리며 발원해 본다.

                             영덕불교사암연합회장 서남사 주지 현담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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